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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진칼럼] 한국의 ‘선진국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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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08 22:45:20 수정 : 2019-12-08 22:4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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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정치경제 이기심 방임 / 美·英 등 빈부격차 갈수록 심화 / ‘빚내서 국채로 복지’ 악순환 / 무작정 선진국 벤치마킹 안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은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학자 월트 로스토의 ‘경제발전 5단계설’이 보여주듯 후진국을 열심히 도와 중진국으로 만들고 선진국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공산주의 종말 이후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도 비슷한 철학으로 서양의 민주시장경제가 21세기를 지배할 것이라고 보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가지 모두 사실과 먼 학설이 돼 버렸다. 후진국은 대부분 후진국으로 남아 있고, 중진국도 발전할 수 없고, 선진국도 덫에 빠지게 됐기 때문이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후진국이 노동집약적인 경제성장에 성공해 국민소득이 1만달러 정도 되면 소위 ‘중진국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동안 중남미 등 이러한 경험을 한 나라가 많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려면 몇 가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바로 고등교육, 제3차 산업투자, 기간산업성장, 토지개혁, 노동시장과 소득분배 구조개선 등을 통해 선진국으로 진입하게 된다. 여기에는 문명적 배경이 필요하다. 서방을 제외하고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한 동양 유교문화권뿐이다. 자동차, 선박, 컴퓨터, 인공지능(AI), 스마트폰, 스포츠 등 분야에서 동·서양이 경쟁하고 있다. 그런데 동양이 앞서는 분야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간직하고 키워온 동양문명 덕분이다.

중진국 함정을 겨우 벗어난 우리는 이제 새로운 기로에 서 있다. 바로 ‘선진국 함정’이다. 미국이 주도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나 유럽이 주도한 2010년의 유로 위기는 단순한 경제문제가 아니라 서양문명의 문제다. 곳곳에서 서양문명의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에 입각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시도, 이탈리아·오스트리아 등에서 30대 초반의 극우파 총리 등장이다. 이러한 현상이 선진국 함정의 증표로 모두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자유, 평등, 정의라는 이념보다는 자국의 이익부터 우선시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장 클로드 융커 EU집행위원장이 한 말에서 정확히 알 수 있다. “우리 지도자들은 유로 위기에 봉착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다. 다만 그것을 할 경우 어떻게 재선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것이 문제다.” 서양식 자유경제체제에 대한 직격탄이다.

이번 겨울 프랑스는 거대한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게 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국가에 꼭 필요한 사회보장제도의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은퇴 연령이 늘어나는 것을 반대하고, 연금이 줄어드는 것도 결사반대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낙후와 쇠락이 불 보듯 뻔한데 서양은 바로잡을 결의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서양의 정치경제는 개인의 이기심을 방임하는 쪽으로 방향이 설정돼 있어 고치기 어렵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매년 빈부격차가 급격히 증가하고 복지를 위한 국채가 늘어나고 있지만 대책이 없다. 2050년쯤에는 중산층이 없어지고 부자와 빈자로 나뉘어 사회불안을 야기시키고 국가는 힘을 잃어가는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현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서양의 자유경제체제는 몰락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서양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표 등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정책을 계속 흡수하고 있다. 선진국이 그렇게 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 ‘선진국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서양처럼 ‘빈부격차가 증가하는데 빚을 내 국채로 복지를 하는 현상’은 빨리 개선돼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빚 복지’ 현상의 근거가 되고 있는 사회심리를 고쳐야 한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 노력하는 ‘전통문화’에서 멀어지고 대신 남의 탓을 하는 ‘질시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함정에 빠진 서양 선진국을 보면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서양 모델을 따라가기보다는 동양문명에서 갈 길을 찾아야 한다. 동양문명에는 자유, 평등, 정의 등 서양이념이 넘보지 못하는 교육중시, 현능주의(meritocracy·능력주의나 실력주의를 말함), 근검절약, 자기수양 등의 훌륭한 전통을 갖고 있다. 우리가 ‘금수저와 흙수저’, ‘헬조선’, ‘갑질’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잘 살아가려면 동양문명의 장점을 잘 살려 나가는 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최영진 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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