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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역사 거꾸로 돌리는 ‘문희상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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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2-08 22:46:26 수정 : 2019-12-08 22: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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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 日기업 한푼 안내도 무방 / 모금 자금, 위자료 아닌 기부금 / 강제동원 대법 판결 정면 위배 / 천문학적인 자금 마련도 의문

문희상 국회의장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하나.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한 문희상 해법이 그동안 피해자와 관련 단체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어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해법의 골자는 한·일 기업의 자발적 기부금, 한·일 국민의 자발적 성금, 일본 정부 예산으로 조성됐던 화해치유재단 기금의 잔금, 한국 정부 출연금으로 마련된 자금을 피고 기업을 대신해 피해자에게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김청중 도쿄특파원

이는 일제강점과 피고 기업의 강제동원 관련 행위를 불법으로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결국 한·일관계의 국제법적 기반을 흔들었다고 억지 주장해온 아베 신조 정권 입맛에 맞춰 양국 갈등관계를 미봉하려는 굴욕적 방안에 불과하다.

 

일부에서 문희상 해법에 대해 우리 정부가 일본 측에 제안했다고 공개한 소위 ‘1+1’안에 알파(α)를 더한 ‘1+1+α’안이나 ‘2+2+α’안으로 설명한다. 대단한 착각이다. 두 안은 질적으로 다르다. 정부안은 ‘피고 기업’을 포함한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의 자발적인 ‘출연금’으로 원고(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한다는 안이다. 피고 기업이 참여하고 위자료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부족하나마 대법 판결 정신이 반영됐다고 주장할 수 있다. 반면 문희상 해법은 피고 기업이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무방하고 모금 자금도 기부금 형태이다.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나 배상금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희박해 그동안 피해자 측 노력이 무위가 된다. 일본 측이 우리 정부 제안에 즉각 반대한 것과 달리 이 해법에 주목하는 배경이다.

 

화해치유재단 기금의 잔금 활용은 철회됐지만 어이없는 발상이다. 2015년 위안부 문제 합의를 대한민국 법률로 인정한다는 결과를 가져오는 아이디어였다. 결과적으로 일본 정부 예산이 포함됐다고 주장하려던 논리적 근거도 함께 사라졌다. 피해자의 재판 청구권을 강제로 소멸시키는 방안이 포함된 것도 위헌 소지가 있다. 문 의장은 이에 대해 “그건 어쩔 수 없다. 그건 헌재에 가서 (판단)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루한 소송전을 벌여온 피해자들에게 다시 법률문서에 파묻혀 있으라는 무책임한 사고다.

 

문희상 해법이 한·일관계 경색을 풀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면 천문학적 자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이 해법의 대상은 대법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피해자도 포함하고 있다. 강제동원 피해 신고자는 22만명이고 이 중 2만여명이 관련 근거를 갖고 있다. 이 건과 관련한 대법의 위자료 판결 금액이 약 1억원임을 감안할 때 신고자 기준 22조원, 근거보유자 기준 2조원이다. 문희상 해법 관련 법안은 소요 금액을 약 3000억원으로 계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만난 일본 정부 당국자마저 “3000억원으로 가능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원폭 피폭자, 사할린 이주동포 등 일제강점기 다른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정부의 태도도 문제다. 입법부 논의라는 이유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아 논란이 가중된다. 과거사 해결을 위한 시스템 마련을 강조한 남관표 주일 대사의 발언 등을 고려하면 정부가 큰 틀에서 동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문희상 해법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아니라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한·일관계를 다시 뒤틀고 혼란을 가져올 방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때 피해자와 우리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 해법을 강조했다. 그러다 민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 합의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피해자와 국민 동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이런 입장이 흔들려 ‘피해자 없는 해법’에 합의할 경우 후폭풍은 피할 수 없다.

 

정치 일정상 문희상 해법의 입법화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설령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민사소송 재판 당사자인 피해자의 동의가 없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서라도 역사의 과오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김청중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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