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소판과 응고
‘혈소판(platelet)’은 적색골수에서 만들어지며 불규칙한 모양을 하고 있다. 그 크기는 약 2㎛ 정도로 작고 무색이며 핵이 없다. 어른의 정상 혈소판 수치는 약 15만~40만/㎣이고, 수명은 보통 5~10일 정도로 정상적인 수명을 다하면 대식세포에 의해 간, 비장에서 파괴된다.
혈소판의 대표적인 생리적 기능은 ‘피를 멈추게 하는 것(지혈작용)’으로 출혈을 막아 능동적으로 생명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염증 반응에서 면역세포와 매개자로도 작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면역반응과 염증반응에도 일부 역할을 한다.
1. 지혈과정
지혈(hemostasis)은 ‘혈액’을 뜻하는 ‘haima’와 ‘차단’을 뜻하는 ‘stasis’의 합성어로 혈액을 손상된 혈관 안에 가두는 과정을 의미한다. 지혈은 국소적인 ‘혈관 수축’, 일시적 봉합을 위한 ‘혈소판 응집’, 상처부위를 막는 ‘혈액 응고’ 세 가지 단계로 진행된다.
혈관 수축 : 혈관이 손상되면 즉각적으로 혈관내피세포에서 방출하는 분자들에 의해 혈관 수축이 일어나서 혈액 흐름과 혈관 내부의 압력을 줄여준다. 보통 상처가 난 부위를 압박하는 것도 손상된 주변으로 혈액의 흐름을 줄여주기 위한 처치이다.
혈소판 응집 : 혈소판은 노출된 혈관내피세포의 콜라겐 단백질에 부착(platelet adhesion)되고 ‘혈소판 마개(platelet plug)’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부착된 혈소판들은 상처 주변으로 여러 종류의 물질들을 방출하여 혈관 수축, 혈소판 응집, 혈액 응고의 지혈과정을 더욱 촉진시킨다.
혈액 응고 : 혈액 응고는 혈액이 액체 상태에서 젤라틴 같은 덩어리로 변하는 복잡한 연쇄반응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프로트롬빈(prothrombin)이라는 응고인자는 트롬빈(thrombin)으로 전환된다. 트롬빈(thrombin)은 섬유소원인 피브리노겐(fibrinogen)을 피브린(fibrin)으로 바꾸어 주고, 피브린은 혈소판 마개를 둘러싸는 ‘그물막’을 형성하게 된다. 적혈구가 이 그물막에 걸리면서 혈병(clot)이 만들어 지고 손상된 혈관을 막게 된다. 정상적인 상태의 혈액응고는 약 3~6분 이내에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면서 혈관 내피세포가 재생되면, 응고된 혈병들이 서서히 파괴되는 섬유소 용해현상(fibrinolysis)이 일어난다. 건강한 혈관의 경우, 혈관 내에서 혈액응고와 섬유소 용해현상은 항상 평형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혈관 내에서의 과도한 혈전 형성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혈액과 혈관을 각각 ‘차량들과 도로’라 생각해보자! 차량들은 정상적인 도로 내에서 어디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어느 한 곳에 손상이 생기면 사고(혈액 유출)가 생길 수 있다. 도로를 운행하는 많은 차량들 중에 ‘도로보수차량(혈소판)’이 출동하여 도로를 보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혈관 수축: 도로가 손상되어 ‘도로보수차량(혈소판)’이 도착하면 먼저 펜스와 삼각대를 설치하여 도로를 통제하고 차량의 흐름을 조절(저속주행)한다.
혈관 응집: 처음 도착한 도로보수차량(혈소판)은 여러 ‘다른 보수차량들’을 현장으로 불러들여서 사고를 방지한다.
혈소판 응고: 도로보수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장비(응고인자)’들을 모아서 손상된 도로를 보수하고, 어느 정도 도로의 기능이 회복되기 시작하면 ‘도로보수차량들과 장비들을 철수’시킨다.
2. 항응고제
고혈압과 당뇨에 의해 혈관의 내피가 손상되면 정상적인 혈액응고와 용해현상의 균형이 깨지면서 혈관은 좁아지고 결국, 막히게 되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심근경색과 뇌경색은 관상동맥(coronary artery)과 뇌동맥이 막힐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혈관성 질환들이다. 의사들은 이런 질환들을 예방하기 위해 ‘혈소판 부착을 저해’하는, ‘응고연쇄반응을 억제’하는 두 가지 종류의 항응고제들을 사용한다.
‘혈소판 부착을 저해하는 약제’에는 대표적으로 아스피린(aspirin)과 플라빅스(Plavix)가 있다.
아스피린은 COX라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한다. COX가 억제되면 혈소판의 응집이 줄어들고 프로스타글란딘과 관련된 항염증, 해열, 진통 효과도 나타난다. 플라빅스는 혈소판의 수용체를 변형시켜 응집을 방해하고 응고 과정에서 피브리노겐과 GPIIb/IIIa의 결합을 억제하여, 혈소판 부착과 응고 과정을 동시에 억제할 수 있는 약제이다.
‘응고연쇄반응을 억제하는 약제’로는 와파린(warfarin, Coumarin)과 헤파린(hepain)이 있다. 와파린은 응고인자 합성의 보조인자로 작용하는 비타민 K의 작용을 억제하고 먹은 약(PO) 형태이다. 헤파린은 트롬빈(thrombin)과 피브린(fibrin)의 형성을 억제하는 작용을 하며 혈관 주사(IV)를 맞는 형태이다.
‘아스피린과 플라빅스’는 지혈작용의 첫 단계인 혈소판 작용의 기능을 인위적으로 저하시키기 때문에 이 약제들을 먹고 있는 환자를 수술하기 위해서는 ‘4~7일 정도 약을 끊어야’ 한다. 의사는 혈소판의 기능이 회복되도록 기다려야 하고, 꼭 출혈 경향을 유지해야 하는 경우는 입원해서 와파린과 헤파린으로 대체하여 유지하다가 수술 전 끊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응급수술은 기다릴 시간이 없다. 수술 도중 지혈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수술하는 의사 입장에서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한 상황인지 상상할 수 있다.
인체생리학을 기반으로 인간에게 각종 질환이 왜 생기는지에 대한 기전을 알기 쉽게 정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