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보지도 못하고···너무 일찍 떠난 ‘아기 독수리’ 김성훈

김은진 기자
한화 이글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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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전은 지난해 후반기였다. 7월22일 삼성전에서 5.1이닝 2안타 6삼진 1실점으로 역투를 펼쳤지만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던 스무살의 우완 투수 김성훈은 단숨에 한화의 새로운 ‘아기 독수리’로 떠올랐다. 이후 중간과 선발을 오가며 한화가 가을야구로 가기까지 함께 했던 김성훈은 한화가 선발로 미래를 그리는 ‘영건’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 3월27일, 시즌 첫 등판은 광주 KIA전이었다. 올시즌 선발로 개막을 맞은 김성훈의 첫 등판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치러졌다. 존경하는 아버지 김민호 KIA 코치와 ‘적수’로 만나는 경기에 많은 시선이 쏟아졌다. 아들을 상대 선발 투수로 맞이하게 된 설렘과 긴장을 아예 감추지는 못하던 김민호 코치를 향해 KIA 더그아웃에서는 경기 전날부터 “라커룸에서 경기를 보시라”는 격려 섞인 농담이 쏟아지기도 했다.

데뷔 첫해 실패한 첫승에 다시 도전하는 2019년의 첫 경기에서 김성훈은 3.1이닝 4안타 4실점으로 물러났다. 성공 앞에는 늘 좌절이 따른다. 아쉬움 속에 마운드를 내려온 그날 이후 2군에 갔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지만 선발 투수로의 꿈을 놓지 않았던 김성훈의 선발 등판은 결국 그날 그 경기가 마지막이 되었다.

프로야구 선수가 되어 한창 선발의 꿈을 무럭무럭 키우던 어린 투수 김성훈이 황망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23일 새벽 광주시 한 건물 옥상에서 추락한 채 발견됐고 바로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지난 20일까지 충남 서산에서 마무리훈련을 마치고 겨울 휴가가 시작되자 부모님이 계신 광주로 간 지 이틀 만이었다. 경찰은 CCTV 등 증거를 종합해 수사한 결과 실족사로 결론을 내렸다.

아직 빛을 보지도 못한 어린 선수의 사망 소식이 더욱 야구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김성훈이 야구인 2세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 역시 같은 동료이기에 야구인들의 안타까움은 배가 되고 있다.

아버지를 따라 야구선수의 꿈을 키우는 아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 중 프로야구 유니폼을 입고 데뷔까지 하는 데 성공하는 2세가 나오기는 쉽지 않다. 2017년 2차 2라운드로 한화에 지명된 김성훈은 선발 투수로 데뷔하고 아버지의 팀과 1군에서 맞대결까지 하면서 더욱 훈훈한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아버지인 김민호 코치도 아들 사랑이 지극했다. 그라운드에서는 냉정한 상대 팀 코치였지만 사석에서는 아들이 광고 모델이 돼 촬영한 한화 구단의 마케팅 영상을 휴대폰에 담고다니며 보고 또 보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승리투수 김성훈’이라는 선물을 안겨드리고자 올해도 내내 1군에서, 2군에서 땀 흘렸던 김성훈의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언제나 발그레 홍조 띤 얼굴에 수줍게 웃으며 말수도 적었던 막내의 비보에 한화 선수단도 큰 충격에 빠졌다. 23일 오후 소식을 접한 선수들 모두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몇 번씩 서로 확인하며 충격과 슬픔을 삼켰다. 한화 선수단은 24일 저녁 구단 버스를 타고 모두 김성훈과 못다한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광주로 이동한다. 한용덕 한화 감독과 정민철 한화 단장은 23일 저녁 소식을 듣고 바로 빈소를 찾았고 김민호 코치와 KIA에서 함께 했던 김기태 전 KIA 감독도 23일 밤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며 곁에서 눈물을 흘렸다. 수많은 야구인들이 빈소를 찾고 있다. 발인은 25일이다.

한화 구단 한 관계자는 “마무리훈련 마지막날 성훈이에게 ‘운동 많이 했느냐. 몸이 좋아졌다’고 했더니 쑥스럽게 웃어 엉덩이를 툭 쳐줬다. 그게 마지막 대화가 됐다”며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침통해했다.

밝은 모습으로 데뷔해 짧은 2년 사이에 기쁨과 시련의 순간을 오가며 데뷔 첫승의 꿈을 키우던 김성훈은 하늘로 갔다. 꽃이 너무 일찍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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