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이준헌 기자

이준헌 기자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한숨 자고 나면

거짓말처럼 편하고

가벼워지는 몸

잠은 나에게

달콤한 꿈이고

살려주는 은인이고

만만한 친구이네

고마운 마음

잊고 있다가도

힘들 때면

몹시 그리운 잠

약이 되고 꿀이 되는 잠

잠이 있어

이만큼 살아왔네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에서

저는 한때 잠이 빨리 든다는 사람, 깊이 잔다는 사람을 몹시 부러워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이 빨리 오지 않거나 잔다고 해도 숙면을 취하는 일이 적어 그것이 일상의 삶에도 방해가 되곤 했지요. 요즘은 비교적 잠을 잘 자는 게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입니다. 처음엔 약기운 때문인가 의심했지만 십여년을 투병하면서 몸이 원하는 잠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잘 응답하려 노력하다 보니 그리된 것 같습니다.

맛있는 잠, 꿀잠, 달콤한 잠에 대한 예찬론을 시로 요약해 보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잠일기’에서 이렇게 적었지요.

잠을 자면서 나는

근심을 내려놓고

평화를 업어주는

착한 엄마가 됩니다

잠을 자면서 나는

꿈을 사랑하는 꿈이 됩니다


요즘은 자주 기차를 타고 서울, 부산을 오르내리는데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이들이 많지만 정신없이 자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면 집이 아닌 차 안에서 저렇게 편히 잘 수 있을까 생각하며 유심히 관찰을 해 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자는 동안만은 순하고 부드러운 모습입니다. 사납고 노여운 눈길, 증오에 일그러진 표정은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잠을 자야 할 밤시간에 일을 하느라 늘 잠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하여 잠시 잠을 잘 잘 수 있게 도와주는 장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수면제를 먹어야 겨우 잠들 수 있고 밤마다 악몽을 꾸어 괴롭다고 호소해 오는 친지들을 더 자주 기억하는 요즘입니다.

진정 잠을 잘 자야만 마음이 좀 넉넉해지고 성격도 좋아질 것 같습니다. 기도시간에 어찌 성당에서 잠을 잘 수 있느냐고 곧잘 남의 흉을 보던 제가 이젠 더 많이 졸고 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지! 그런데 그 잠깐의 잠이 또 얼마나 맛있고 황홀한지 깨고 싶지 않을 적도 있습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나오는 ‘잠자는 이들과 죽은 이들이 어쩌면 그렇게 서로 같은지!’라는 구절을 저는 좋아합니다. 우리가 매일 잠을 잔다는 것은 어쩜 그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올 영원한 잠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겸허한 눈감음이 아닐는지요. 꿀잠을 자면서 이 실습을 잘 하다 보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길고 긴 잠의 나라도 웃으면서 가지 않을까. 오늘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시 잠을 청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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