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해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신약이 신속하게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환자들이 마음 놓고 쓸 수 있도록 정부와 제약사가 리스크를 일정 비율로 분담하는 위험분담제(RSA)나, 비용 대비 효과가 불분명해 보험급여 적용이 어려웠던 약을 환자가 좀 더 부담하는 선별급여 등의 제도를 도입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허가 등재된 약제에 사후평가를 실시해 임상적 유용성이 떨어지면 보험급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약가를 조정하고, 사회적 요구가 높은 약들에 재정을 더 투입하려는 정책이 추진 중이다. 최근 필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심평원의 연구과제로 실제 임상현장에서 급여 처방된 면역항암제의 사후평가를 실시해 일명 리얼 월드 데이터를 발표했다. 이어 항암제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표준화된 가치평가도구 마련을 위한 연구도 수행 중이다.
재평가를 통해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한 약제들은 내보내고, 암 등 중증질환을 위한 신약이 더 들어올 수 있는, 즉 '인&아웃(in & out)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일부의 우려처럼 사후평가에만 무게가 쏠리고 건강보험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신약의 수나 도입 속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당초 취지는 무색해질 뿐이다. 결국 암 환자들은 기약 없이 약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치평가도구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ASCO, ESMO 양대 암 학회에서 2015년 처음 개발한 가치평가도구는 임상시험 결과만으로 허가된 약들이 실제 임상에서도 똑같은 효용성을 보이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성찰과 고민에서 비롯됐다. 이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한 차례 업그레이드된 가치평가도구를 발표했지만 여전히 객관성 타당성 재현성을 검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심평원의 연구과제로 가치평가도구 개발이 이제 첫 삽을 떴다. 이 도구는 우선 사후평가에 적용될 전망이나 여러 측면에서 완성도를 높여 가야 약의 효능이 가치로, 그리고 그 가치가 약가로 이어지는 방향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심층적인 연구와 다양한 약물을 대상으로 한 검증, 이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사 환자에 대한 홍보 및 교육, 그리고 이해당사자 간 의견 수렴을 진행한 후에 실제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강진형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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