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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암 환자들에게 신약혜택 주려면

입력 : 
2019-11-25 00:06:01
수정 : 
2019-11-25 17: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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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환자들은 대부분 말기 암 환자들이다. 최근 도입된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는 이런 환자들의 삶의 불씨를 살리는 희망이 되고 있다. 올봄 진료실을 방문했던 30대 후반의 전이성 외이도암 환자는 6년 전 처음 암 진단을 받고 수술, 방사선 치료, 항암화학요법 등을 받았으나 재발과 전이를 반복했다. 이후 필자를 방문해 유전체검사를 받았고, 여기서 확인된 특정 유전자 변이에 따라 유방암 표적치료제를 오프라벨로 투여받아 많이 호전됐다. 그런데 모든 말기 암 환자들이 이런 신약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치료제가 있어도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너무나 많다. 2011~2018년 전 세계적으로 개발된 신약 307개 중 90%가 출시된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에는 40% 정도만이 도입됐다. 또 신약이 시판 승인을 받더라도 건강보험이 적용되기까지 환자들은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해 미국에서는 수개월 만에 쓸 수 있는 약이 우리는 3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도 환자 접근성 강화를 위해 손 놓고 있지만은 않았다. 신약이 신속하게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환자들이 마음 놓고 쓸 수 있도록 정부와 제약사가 리스크를 일정 비율로 분담하는 위험분담제(RSA)나, 비용 대비 효과가 불분명해 보험급여 적용이 어려웠던 약을 환자가 좀 더 부담하는 선별급여 등의 제도를 도입했다.

이뿐만 아니라 이미 허가 등재된 약제에 사후평가를 실시해 임상적 유용성이 떨어지면 보험급여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약가를 조정하고, 사회적 요구가 높은 약들에 재정을 더 투입하려는 정책이 추진 중이다. 최근 필자가 이끄는 연구팀은 심평원의 연구과제로 실제 임상현장에서 급여 처방된 면역항암제의 사후평가를 실시해 일명 리얼 월드 데이터를 발표했다. 이어 항암제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표준화된 가치평가도구 마련을 위한 연구도 수행 중이다.

재평가를 통해 임상적 유용성이 불분명한 약제들은 내보내고, 암 등 중증질환을 위한 신약이 더 들어올 수 있는, 즉 '인&아웃(in & out) 구조'를 만들겠다는 취지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일부의 우려처럼 사후평가에만 무게가 쏠리고 건강보험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는 신약의 수나 도입 속도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당초 취지는 무색해질 뿐이다. 결국 암 환자들은 기약 없이 약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가치평가도구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ASCO, ESMO 양대 암 학회에서 2015년 처음 개발한 가치평가도구는 임상시험 결과만으로 허가된 약들이 실제 임상에서도 똑같은 효용성을 보이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성찰과 고민에서 비롯됐다. 이후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한 차례 업그레이드된 가치평가도구를 발표했지만 여전히 객관성 타당성 재현성을 검증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심평원의 연구과제로 가치평가도구 개발이 이제 첫 삽을 떴다. 이 도구는 우선 사후평가에 적용될 전망이나 여러 측면에서 완성도를 높여 가야 약의 효능이 가치로, 그리고 그 가치가 약가로 이어지는 방향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심층적인 연구와 다양한 약물을 대상으로 한 검증, 이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되는 의사 환자에 대한 홍보 및 교육, 그리고 이해당사자 간 의견 수렴을 진행한 후에 실제 활용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강진형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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