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앞서 문재인정부는 아무런 대책 없이 일본과의 '충돌'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2018년 11월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함으로써 박근혜정부 시절 어렵사리 이뤄낸 위안부 합의를 무력화했다.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 즉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 강제징용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보고 일본 기업이 한국 피해자들에게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한 판결이 내려진 이후 문재인정부는 이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가 '옹졸한'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정부가 한일 지소미아 종료로 대응한 것은 크나큰 실책이었다. 청와대가 "한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한 일본과 어떻게 민감한 군사정보를 주고받느냐"고 강변하며 "지소미아 종료와 한미동맹은 관계가 없다"고 했지만 미국의 반발을 불러왔다.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이 북한에 대한 억지와 방어는 물론 동북아 안정의 보루라고 생각하는 미국은 지소미아를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간 '연결고리(linking pin)'로 간주했다.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의 눈에 수류탄 안전핀을 뽑은 것과 같았다. 수류탄을 던지기 전에 미국은 안전핀을 다시 꽂아 넣으라고 한국을 강하게 압박했다.
결국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유예를 선언했다. 수출규제 해제를 위한 대화를 일본과 재개하고,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한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일본이 해제하도록 미국이 설득할 것으로 보고 공을 일본 쪽으로 넘긴 셈이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강제징용 문제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일언지하에 거절하지 않은 한국의 방안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한 제안이다.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의 해법으로 한일 기업의 기금과 국민의 자발적 성금 지원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이 제안을 참고 삼아 일본과 물밑 대화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한·미·일 안보협력은 정상화해야 한다. 한국이 당면한 안보 도전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한·미·일 공조체제의 복원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 3위 경제대국 일본, 12위 교역국 한국이 안보협력체로 한데 뭉치면 지구상에서 이를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단단해야 한중 관계도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 주변국과 어정쩡한 거리 두기는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협한다. 문재인정부가 이 점을 명심하고 대북 정책을 비롯해 주변 외교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길 바란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前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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