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특정암 등 질병유전자가 있는지, 탈모·고혈압 등에 취약한 유전자는 없는지 검사하는 유전체분석서비스는 성장잠재력이 큰 뉴비즈니스다. 그런데 국내 DTC(소비자 직접 의뢰 유전체검사)업체들은 3년째 손발이 묶여있다. 소비자들의 관심이 큰 질병 유전체검사는 아예 불법이고 그나마 가능한 비질병검사는 혈압·탈모 등 12개로 제한해놨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360여 개 DTC를 허용하고 있고 미국 등 해외 업체를 통하면 암·알츠하이머·뇌경색·골다공증 등 온갖 질병 유전체검사를 받을 수 있다. 역차별 불만이 커지자 정부가 꺼내든 게 서비스항목을 57개로 찔끔 확대하는 시범사업인데 업체들은 썩 내켜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할 만한 수준이 아닌 데다 시범사업 자체가 당장 항목 확대를 안 해주겠다는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 일로에 있는 원격의료도 19년째 시범사업 중으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투자 개방형 병원 설립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정부도 국민 편익·후생 차원에서 편의점 상비약·DTC서비스·원격의료 확대와 네거티브 규제시스템으로의 전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그런데도 강단 있게 추진하지 못하는 건 약물 오남용·환자 안전 등을 전가의 보도처럼 흔들며 무조건 반대만 하는 약사·의사 등 힘센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과도할 정도로 보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물론 중국도 하는 걸 우리가 못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기득권 세력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 억지일 뿐이다.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해의 조율이다. 특히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잡고 나라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강력한 조율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꼭 필요한 일인데도 괜히 건드렸다가 골치만 아파질 것을 우려해 좌고우면하거나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는 건 직무유기이자 무책임의 극치다. 기득권 지대추구를 최우선적으로 혁파할 적폐로 규정했던 정부 아닌가. 책임은 내가 진다는 결기로 이제 결과물을 내놔야 한다.
[박봉권 과학기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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