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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 퀀텀점프하려면-지능형 반도체·5G·이미지센서 3대 축 ‘시스템+메모리’ 신개념 반도체 만들자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19.11.22 09:40:03
반쪽짜리 반도체 강국.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한국은 세계 시장의 30~40%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60~70%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60% 이상 차지하는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경기 변동이 심하다. 경기가 좋을 때는 이익이 크게 늘지만 추락하는 것 역시 한순간이다. 반면 시스템 반도체는 워낙 종류가 많고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에 경기에 덜 민감하다. 때문에 반도체 시장이 기로에 서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한 해법은 ‘시스템 반도체 육성’이었다. 다행히 정부 역시 이 같은 점을 인식하고 시스템 반도체 개발에 사활을 걸었다.

과제 1. 자동차 ‘눈’을 잡아라

▶CIS 선점하면 미래가 보인다

요즘 스마트폰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카메라다. 스마트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CMOS 이미지센서(CIS)다. 카메라 렌즈에 들어온 정보를 디지털 신호로 전환하는 부품이다.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가 스마트폰의 ‘두뇌’라면 이미지센서는 ‘눈’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CIS는 비단 스마트폰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자율주행차나 산업용 로봇 등 미래 산업 핵심 부품이다. 시장조사업체 TSR에 따르면 이미지센서 시장은 올해 159억달러에서 2023년 244억달러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다행히도 CIS 시장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기업과 큰 격차를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21%)는 소니(48.3%)에 이어 세계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 중이다. SK하이닉스 역시 2.1% 점유율로 5위권 밖이지만 나름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CIS를 둘러싼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소니는 1조원이 넘는 돈을 들여 나가사키현에 이미지센서 공장을 세울 계획이다. 일본 전자업계가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는 것은 2016년 도시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질세라 삼성전자 역시 내년부터 생산량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CIS 시장에서 주목할 기업은 바로 후발주자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전사적으로 이미지센서 역량 강화에 주력한다. 2017년 말부터 미래기술연구원을 이끌던 홍성주 담당(부사장)이 이미지센서 사업을 맡아 기술 역량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과거 SK하이닉스 이미지센서는 800만화소 이하 중저가 제품에 그쳤다. 하지만 올해 1300만화소를 공급한 데 이어 하반기부터 1600만화소, 내년에는 4800만화소까지 라인업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한태희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CIS는 한국 기업이 잘할 수 있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중 하나로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과제 2. 중견 반도체 기업 키우자

▶실리콘웍스 같은 기업 10개만 있다면…

한국 반도체 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매출 수천억원 규모의 허리를 받치는 기업이 적지 않다. 요즘 가장 분위기가 좋은 곳은 DB하이텍이다. DB하이텍의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618억원으로 집계됐다. 분기 사상 최대 규모다. DB하이텍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전문기업으로 아날로그 반도체 생산에 특화됐다. 이길구 DB하이텍 차장은 “전력관리칩(PMIC)이나 고성능 센서 주문이 늘며 가동률이 90%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DB하이텍 올해 매출은 7000억원을 가뿐히 넘어 8000억원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운드리 기업에 DB하이텍이 있다면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 중 주목할 곳은 실리콘웍스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실리콘웍스는 2014년 LG그룹 계열사로 편입된 후 날개를 달았다. 합병 전에는 연매출 3000억~4000억원 규모였지만 지난해 매출 790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예상 매출은 약 8600억원.

실리콘웍스는 TV용 디스플레이 패널을 구동하는 데 사용하는 디스플레이 집적회로(드라이버 IC)가 주력 상품이다. 지난해부터 LG전자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 들어가는 타이밍컨트롤러(티콘) 사업을 받으며 매출이 더욱 늘었다.

실리콘웍스 전체 임직원은 약 1100명. 이 중 올해 연구개발 인력만 100명 이상 늘리며 투자를 강화한다. 내년에는 연매출 1조원 돌파라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이치우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산업지원본부장은 “DB하이텍이나 실리콘웍스 같은 중견기업이 10개 이상 늘어나면 한국도 시스템 반도체 강국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말한다.

과제 3. 파운드리 강국 위한 조건

▶고객사와 경쟁 자제하고 ‘선택과 집중’

최근 국내 시스템 반도체 업계에서는 주목할 만한 소식 하나가 들렸다. 삼성전자는 새너제이에서 진행하는 CPU(중앙처리장치) 프로젝트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미국 CPU 프로젝트 팀은 삼성전자에서 유일하게 자체 CPU 코어를 개발하는 조직이다. 현재 모바일에 들어가는 CPU는 대부분 ARM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삼성전자는 ARM 종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체 프로젝트를 가동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결정에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 반도체 업계에서 유일하게 CPU를 개발할 여력이 있는 조직이 해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도체 전문가들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측면에서 옳은 결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ARM 코어를 그대로 써도 충분한 데다 앞으로는 CPU보다 GPU(그래픽처리장치)가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옳은 결정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파운드리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하는 중이다. 파운드리는 고객사와 긴밀한 협조와 신뢰가 필수다.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는 ‘우리는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즉, 생산에만 집중하고 설계하는 고객사 시장에는 뛰어들지 않겠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큰 성과 없는 CPU보다 파운드리나 GPU 등에 집중하며 고객사와 경쟁을 피하는 것이 낫다.

안진호 한양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시스템 반도체 성패는 ‘선택과 집중’에 달렸다”며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거대 기업이 파운드리를 맡고 중소 규모 팹리스가 들어선다면 한국 반도체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유현규 반도체공학회장(지능형반도체포럼 운영위원장)

지능형 반도체 개발에 ‘반도체 코리아’ 미래 달려

올해 정부는 약 1조원 규모의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기술개발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시켰다. 지능형반도체포럼 운영위원장을 맡은 유현규 반도체공학회장에게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위한 해법을 물었다.

Q. 내년 반도체 시장을 어떻게 보나.

A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마이크로소프트 윈도7 지원 종료에 따른 PC 수요 증가 등이 주요 변수가 될 것 같다. 데이터센터 역시 주목해야 한다. 인텔은 올해 10월 10세대 CPU를 출시했다. 이 CPU를 기반으로 고성능 데이터센터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을 포함한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데이터센터 투자를 확대하면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증가한다. 미중 무역갈등은 변수다. 중국 반도체 수출 비중이 40%에 육박하는 한국에 직접적인 영향으로 다가온다.

Q. 정부가 3대 신산업 중 하나로 시스템 반도체를 꼽았다. 어떤 분야에 주력해야 할까.

A 세계 거의 모든 IT 기업이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등 초고성능 연산이 가능한 반도체에 주목한다. AI 반도체, 혹은 지능형 반도체라고 불리는 이 분야는 소재, 생산 시스템, 소프트웨어(SW) 등 종합 기술을 요구한다. 출발이 다소 늦었지만 아직 기회가 남았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협업을 강화하고 산업 저변 확대를 위한 중장기 지원이 필요하다. 주목할 점은 반도체 기술이 지금 큰 전환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집적도 증가가 한계에 다다르며 여러 기능의 반도체칩을 2차원 혹은 3차원으로 적층하는 형태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를 중심으로 시스템 반도체를 갖다 붙이는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Q. 시스템 반도체 육성 전제 조건은.

A 경쟁력 있는 생태계 확보가 중요하다. 대기업 수요, 플랫폼을 통한 신생 기업 육성, 기존 중소-중견기업 연계 강화 등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인재 확보도 쉽지 않은 문제다. 단순히 수를 늘리는 것보다 기술이나 시장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융합형 인재 육성을 위해 산·관·학이 힘을 모아야 한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4호 (2019.11.20~2019.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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