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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산업 언제쯤 회복? “내년 상반기엔 반등” 전망이 우세 日 보복·삼성 비메모리 성과 변수

  • 김경민 기자
  • 입력 : 2019.11.22 09:42:33
반도체 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20%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핵심 산업이다. 반도체 경기가 악화되면 한국 경제도 덩달아 휘청일 수밖에 없다.

한동안 침체를 보였던 반도체 경기가 내년 상반기 반등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지만 변수가 적지 않다. 바닥론이 나와도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이유다.

반도체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만 일본 수출규제, 미중 무역분쟁 등 악재가 여전히 많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이천공장.

반도체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만 일본 수출규제, 미중 무역분쟁 등 악재가 여전히 많다. 사진은 SK하이닉스 이천공장.



변수 1. 갈수록 하락하는 D램값

▶올 들어 60% 이상 하락 ‘바닥 멀었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D램값이 반등하지 못했다는 점은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PC용 D램(8GB 기준)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한 달 새 4.42% 떨어진 2.81달러에 그쳤다. 2016년 6월부터 이 제품 고정거래가격이 집계된 이래 최저가다. 지난해 말(7.25달러)과 비교하면 올 들어서만 낙폭이 60%를 넘어섰다.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2.94달러를 유지하며 바닥을 찍었다는 기대감이 커졌지만 아직 가격 상승을 낙관하는 단계는 아니다.

한국은행은 “글로벌 시장에서 D램이 공급과잉 양상을 보이는 데다 아마존, MS(마이크로소프트) 등 데이터센터 관리 기업들이 가격 하락 추세를 감안해 반도체 구매를 미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낸드플래시 가격이 오른다는 것. 낸드플래시(128GB 기준) 고정거래가격은 9월 4.11달러에서 10월 4.31달러로 뛰었다. 다만 지난해 12월(4.66달러)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 가격 상승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국 반도체 산업 쌍두마차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내년 투자 규모를 보수적으로 잡은 것도 D램 반도체 흐름을 아직 알 수 없어서다. 삼성전자는 최근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반도체 사업은 대외환경 등에 따른 메모리 수요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시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공급과 투자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선우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D램 가격이 내년 3분기에나 반등할 듯 보여 내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도 올해 추정치인 13조3000억원보다 감소한 12조1000억원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보탠다.

SK하이닉스도 투자를 확대할 생각이 없다. “내년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량이 모두 올해보다 감소하고 투자도 올해보다 상당 수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입장으로 사실상 투자 축소를 공식화했다. “반도체 수요 상승세가 완만한 가운데 만약 국내 기업이 투자를 대거 늘리면 자칫 ‘치킨게임’ 양상이 벌어질 우려도 크다”는 것이 업계 분위기다.



변수 2. 日 수출규제 언제까지

▶한일 갈등에 중국만 반사이익 우려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일본과의 충돌로 한국 반도체 산업은 더욱 취약한 환경에 놓일 것이다.”

반도체 비관론에 서 있는 알리안츠는 최근 ‘2020년 반도체 부진과 전자산업의 충격’ 보고서를 냈다. “2019년 반도체 산업 매출이 15% 줄며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붕괴 이후 최악의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며 “세계 반도체 산업 매출이 내년 3% 감소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전망치를 내놨다. 5G 이동통신이 스마트폰 교체 주기를 가속화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데다 컴퓨터 수요가 부진하다고 판단한 결과다.

특히 한국 반도체 기업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일본과의 충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본다.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에 나선 지 100일이 지났지만 반도체용 액체 불화수소에 대해 아직 1건도 수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또한 중국 약진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여전하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밸류체인을 보면 일본 업체가 반도체 핵심 소재·부품을 한국에 공급하면 한국이 중국으로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 업체가 이를 세계 시장에 내놓는 구조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무역분쟁을 벌이는 사이, 중국이 첨단기술 육성 전략인 ‘제조 2025’ 정책을 바탕으로 자국에서 반도체 부품·재료를 수급해 경쟁력을 높이면 한국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중국은 2014년 설립된 정부 지원의 반도체 펀드를 통해 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었다. 중국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자급률 목표는 2020년 40%, 2025년 70%에 달한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지원을 통해 자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높일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 위상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변수 3. 삼성 비메모리 성공할까

▶‘비메모리 강자’ 인텔 메모리 공략 역습

반도체 경기 부진에 절치부심한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연구개발(R&D)과 생산시설 확충에 133조원을 투자해 “2030년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이미 메모리 반도체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한 만큼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단기간 성과를 내기 힘든 분야라는 점에서 인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파운드리 분야가 만만치 않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TSMC와 삼성전자의 올 3분기 파운드리 점유율은 각각 50.5%, 18.5% 수준으로 32%가량 차이가 난다. 지난 1분기보다 오히려 격차가 3% 더 벌어졌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는 3분기 영업이익이 34억6000만달러(약 4조1000억원)로 삼성전자를 앞지르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시장 경쟁력을 높이는 데 안간힘을 쓰지만 TSMC 역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는 분위기라 단기간에 삼성 점유율이 높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시장에 야심 차게 진출했지만 탄탄한 입지를 다져온 메모리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점도 변수다.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 강자로 꼽히는 인텔은 최근 한국에서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신제품을 내놨다. 롭 크룩 인텔 수석부사장은 지난 9월 말 메모리 반도체 신제품 ‘옵테인DCPM’을 출시하는 자리에서 “메모리, 스토리지 계층 구조의 최첨단 혁신을 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옵테인DCPM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장점을 결합한 제품이다. 전력이 차단돼도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고 가격도 저렴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주목을 받는다. 인텔이 삼성전자가 있는 한국에서 메모리 반도체 신제품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경쟁에 뛰어든 셈이다. 이미 미국 오라클, 중국 바이두 등은 인텔의 옵테인DCPM 제품을 도입하기로 했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인텔의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은 8.8%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비메모리 경쟁력을 기반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 입지를 다져갈 경우 삼성전자도 안심할 수 없다. 특히 인텔이 세계 CPU 시장을 장악해온 만큼 CPU와의 호환성이 뛰어난 옵테인 제품 판매를 늘리면 금세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인텔은 올 4분기 중 96단 3D 낸드를 내놓고 내년에는 업계 최초로 6세대 144단 3D 낸드를 출시할 계획이라 삼성전자 입지가 흔들릴 우려도 크다. 부랴부랴 삼성전자는 6세대 대비 용량·성능을 2배 향상한 세계 최초 7세대 3D V낸드를 내년에 출시해 ‘초격차’ 전략을 펼친다. SK하이닉스 역시 P램, R램 등 차세대 메모리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그야말로 진검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김경민 기자 kmkim@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4호 (2019.11.20~2019.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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