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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대들보 반도체 바닥 쳤나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19.11.22 09:44:30
증권가에 반도체 바닥론이 뜨겁다. 국내 코스피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뚜렷한 반등세를 타면서다. 업계 동향과 돈의 움직임에 밝은 외국인 투자자가 입질에 나섰다는 점은 반도체 바닥론의 강력한 시그널로 해석된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증권가에서 연일 낙관적인 반도체 보고서가 쏟아진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시장점유율 78%를 차지하는 메모리 반도체가 살아난다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다. IT 기업이 신제품을 낼 주기가 돌아왔고, 데이터센터와 5G 투자가 활발해졌다는 점이 낙관론의 주요 근거다. 일부에서는 2017년 ‘슈퍼호황’ 때와 같은 상승 사이클을 기대하기도 한다.



D램의 컴백…올 수출 ‘슈퍼호황기’ 넘어

글로벌 바이어, 무역규제 中 대신 한국行


‘D램이 돌아왔다(D RAM is back)’.

‘회복 그 이상(More-Than-Recovery)’.

‘2020, 예상보다 더 좋을 수도 있는 이유’.

최근 출간된 증권가 반도체 보고서 제목은 낙관론 일색이다. 이처럼 증권업계에서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국내 반도체에 청신호가 들어왔다고 전망한다. 비관론으로 점철됐던 상반기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

각종 통계에서 반등 신호가 읽힌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10월 1~25일 반도체 수출 물량은 2557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204t)에 비해 16% 늘어났다. 7월부터 4개월 연속 증가세일 뿐 아니라, 올해 1·2·6월만 전년 동기 대비 떨어졌을 뿐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누적치도 괜찮다. 올 들어 지난 10월(25일 기준)까지 누적 수출 물량은 2만9834t. 지난해 같은 기간(2만8363t)보다 5.2% 늘었다. 특히 하반기 첫 달인 7월부터 매달 두 자릿수 증가세다.

수출 물량이 늘어나며 생산량은 상승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올 3분기 반도체 생산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3% 늘었는데, 지난 1분기 7.9%, 2분기 7.3%에 이어 증가폭이 커졌다. 자동차와 기계장비 등을 포함한 전체 제조업 생산이 1년 전보다 0.7%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2018년 반도체 수출액은 1267억달러로, 단일 품목 사상 세계 최초로 연간 수출액 1000억달러를 돌파한 바 있다. 올해 10월 말 기준 누적 수출액은 789억달러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슈퍼호황’이 시작된 2017년(786억달러)을 넘어섰다. 이는 2016년 연간 반도체 수출액(622억달러)을 훨씬 웃도는 수치기도 하다.

재고량 감소도 눈에 띄는 지표다. 지난 2분기만 해도 6주 치였던 삼성전자 D램 재고량은 4분기 들어 4주 치로 줄어들었다. SK하이닉스 역시 7주 치까지 늘었던 재고량이 5주 치 정도로 줄었다고 알려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재고량 감소 추세가 이어져 조만간 2~3주 정도의 정상치에 근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반도체 바닥론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시그널은 국내 반도체 ‘투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다. 올해 1월 4일 3만7450원(종가 기준)까지 떨어졌던 삼성전자 주가는 11월 14일 기준 5만2500원으로 크게 반등했다. 반도체 산업 호황기였던 지난해 상반기 주가에 버금간다.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5만8300원에서 8만3400원으로 43% 뛰었다. 업계 동향과 돈의 움직임에 밝은 외국인 투자자가 입질에 나섰다는 점은 반도체 바닥론의 강력한 근거로 해석된다.

▶하반기 들어 각종 지표 회복세

수출 물량·수출액·재고 ‘굿’

바이어 주문 쏟아져 조용한 낙관

각종 지표가 하반기 이후 좋아지는 비결은 수요 증가다. 시기적으로 보면 IT 기업이 신제품을 내놓을 때가 됐고, 서버 업체와 스마트폰 등 전방산업 수요가 빠르게 회복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반도체 초호황을 이끌었던 데이터센터(IDC)가 투자를 재개한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2분기만 해도 전분기 대비 40%까지 급락했던 서버 D램 가격이 3분기 -10%, 4분기 -6%로 하락세가 둔화하는 것도 데이터센터와 관련 깊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본격적인 5G(5세대 이동통신) 도입과 PC 신제품 등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16년부터 이어진 반도체 호황을 이끈 요인은 데이터센터였다”며 “인텔이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데이터센터용 CPU를 다시 생산한다는 점, 미국·중국이 5G를 도입하면 콘텐츠 용량 증가로 데이터센터를 확장해야 한다는 점 등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는 컴퓨터 시스템, 통신장비, 저장장치 등이 설치된 시설로 D램과 낸드플래시를 비롯한 메모리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증권가 의견도 비슷하다. 최도연·나성준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내년 서버 수요 재개와 5G 스마트폰에 힘입어 D램 수요가 늘어날 듯 보인다”며 “아마존 등 인터넷 기업이 4분기부터 서버 D램 주문을 대폭 늘렸고 D램 생산업체와 내년 물량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혔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2020년 서버 D램 수요 비중은 35%까지 증가할 수 있다”며 “D램 가격 상승 전환 시기는 향후 북미 IDC 업체 서버 D램 수요 회복 강도가 좌우할 것 같고 대략 내년 2분기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시장 회복에 거는 기대 역시 크다. 스마트폰은 3년 연속 하향세를 보여왔으나 업계에서는 4년 만인 2020년 성장세로 돌아서리라 전망한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5G 스마트폰 출하량은 올해 1430만대에서 내년 3억2570만대로 급격히 증가한다. 또한 2023년이면 9억대를 넘어설 듯 보인다. 또한 폴더블 스마트폰 출하량은 올해 40만대에서 내년 320만대로 폭발적인 성장을 예고한다(카운터포인트 자료).

유진투자증권은 이 같은 분석과 함께 내년 글로벌 스마트폰 판매량이 올해보다 5% 성장한 14억36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규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 외 화웨이를 포함한 중화권 업체가 다양한 폴더블 스마트폰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글로벌 주요 스마트폰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출시하는 5G폰도 스마트폰 교체 수요를 이끌어낼 요소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메모리 반도체 한 축인 낸드플래시(128GB 기준)는 가격 오름세가 뚜렷하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제품 가격은 지난 10월 31일 기준 평균 4.31달러로 9월보다 4.9% 올랐다. 이 같은 가격 상승세는 반도체 업계 감산효과로 풀이된다. 내년에도 수요량이 공급량을 앞서며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부 관계자는 미중 무역갈등이 악재가 아닌 호재로 작용했다고 해석한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며 대규모 투자에 들어갔지만 미국 제재로 한풀 꺾여 한국 반도체가 살아날 기회를 잡았다고 판단한다.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의 한 CIO(최고투자책임자) 해석도 비슷하다.

“중국 반도체 산업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반도체 공급이 늘고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서둘러 매수에 나서지 않은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의 중국 압박이 거세지자, 바이어들이 기다리지 않고 주문을 넣기 시작했다. 물론 스마트폰과 5G 수요 증가도 반도체 기업에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일본의 소재 수출규제 강화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수요 업체들이 물량 확보에 나선 측면이 있다”며 “한국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대체 불가능하다는 점은 불황기에 가장 빠르게 회복하는 경쟁력”이라고 분석했다.

[특별취재팀 = 명순영(팀장)·김경민·강승태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4호 (2019.11.20~2019.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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