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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칼럼함께하는세상] 영화관의 관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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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1-13 23:26:28 수정 : 2019-11-13 23: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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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끝’이라는 글자가 나오고, 그 뒤에 ‘만든 사람 소개화면 스크롤’ 영상이 나온다. 이를 ‘클로징 크레딧’ 또는 ‘엔드 크레딧’이라 한다. 영화의 주제 음악과 함께, 배우와 감독뿐만 아니라 영화를 제작하는 데 이바지한 사람·기관·단체의 이름 텍스트들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다. 몇몇 클로징 크레딧 뒤에는 짤막한 ‘쿠키 영상’이 추가되기도 한다. 7분 내외의 클로징 크레딧은 영화의 한 부분이지만, 모든 관객이 그것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미려하게 잘 만든 클로징 크레딧, 그것과 함께 울려 퍼지는 음악, 쿠키 영상 등은 관객을 영화관에 계속 붙잡아두는 기능을 한다.

영화가 완전히 끝나기 직전, 일본·미국·한국의 영화관 장면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영화관에서는 클로징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관객 모두가 자리를 지키며 영화를 관람한다. 영화관에서는 클로징 크레딧 음악이 더 들리지 않을 때, 다시 말해 영화가 완전히 끝났을 때, 전등을 켠다. 관객은 그때 비로소 일어난다. 클로징 크레딧의 의의와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삼가는 ‘메이와쿠’(迷惑) 문화의 발로로 해석할 수도 있다. 자기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보는 것도 싫어하는 일본인은, 영화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타인을 의식해 좌석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미국의 영화관에서 관객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클로징 크레딧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지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는 사람도 있다. 클로징 크레딧의 내용까지 꼼꼼히 살피거나, 그것과 함께 나오는 영화 음악을 음미하거나, 쿠키 영상을 기다리는 관객은 자리를 지키고, 그렇지 않은 관객은 자리를 뜬다. 미국인은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게 기본이므로 본인의 선호에 따라 행동한다. 클로징 크레딧에 관심이 없는 관객은, 타인을 덜 불편하기 위해 조심하지만, 타인을 의식해 자리에 앉아 기다리지는 않는다. 영화관에서는 전등이 켜지기 전에 나오는 관객을 위해 출구 방향을 알려준다. 영화관에서는 영화가 완전히 끝난 후에야 전등을 켠다.

한국의 영화관에서는 클로징 크레딧이 올라갈 때 보통 전등을 켜고 출구를 개방한다. 관객은 대부분 그때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영화관에서 전등을 켜는 것은 ‘나가는 관객의 안전을 고려해서’라고 설명하지만, ‘다음 상영 준비를 위한 관람석 청소 등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 관객이 서둘러 나가도록 독촉하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때로는 클로징 크레딧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는데도, 스크린의 영상이 ‘팍’하고 꺼진다. 영상기사가 영화상영을 솔선해서 끝내기 때문이다. ‘빨리빨리 문화’의 한 단면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경구가 말하듯이, 누구나 다른 나라에 가면 현지 생활방식을 따라야 한다. 한국인·미국인이 일본의 영화관에서 본국처럼 행동할 경우 일본인 관객은 그것을 무례한 행위로 받아들일 것이다. 문화적 상대주의 사례다. 그렇지만 한국의 영화관에서 클로징 크레딧을 즐기는 관객의 ‘영화관람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문화 차이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내 영화관의 ‘빨리빨리 문화’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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