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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영우 "영변은 협상카드 효력 떨어져...北 '+α'로 비핵화 의지 보여야"

강중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8 15:35

수정 2019.10.28 17:37

외교안보수석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최근 유튜브 천영우TV 개국, 외교안보 조언자 나서
北 영변 카드만 고집할 경우 비핵화 진전은 신기루
비핵화, 단 1% 가능성 있어도 도전하는 것이 '외교'
"文대통령, 외교장관·북핵수석과 자주 만나 소통해야"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김범석 기자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이 서울시 종로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사진=김범석 기자
"북한 비핵화의 성패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외에 우라늄 농축 시설에 대한 포기의지와 비핵화 진정성을 밝히느냐에 달렸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며 향후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더욱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 수준으로는 미국을 움직여 북한이 원하는 상응조치를 이끌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천 이사장은 과거 참여정부 시절 6자회담 대표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의 외교안보 복심인 외교안보수석을 맡아 오랜 세월 한국의 외교안보 최전선에서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남·북·미 외교안보 문제의 핵심인 비핵화 협상에 깊숙하게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이 실제 비핵화할 생각이 있다면 미래의 핵 부분 만큼은 확실히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北, 현 수준 비핵화 카드로는 상황 진전 불가능"
천 이사장은 북한이 계속 들고 나오는 영변 핵시설 폐기는 협상카드로의 효용이 떨어진다고 못박았다. 영변은 이미 외부에 알려져 있기 때문에 북한이 바라는 상응조치와 등가성이 없다고. 결국 북한이 비핵화의 진정성을 증명하려면 '영변 외(外)' 카드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천 이사장은 "만약 북한이 영변 외 시설에 대해 신고를 하고 포기를 선언할 경우 미국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시설과 대조를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파악하지 못했던 핵 시설에 대한 신고가 이뤄지면 '북한이 진정성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상응조치도 따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영변 카드만 움켜쥐고 변화가 없다면 결국 이는 핵 능력을 고도화하겠다는 의미와 연결되고, 미국도 당연히 줄 것이 없고, 협상을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라면서 "미국은 죽은 말을 새 말 값을 받고 팔겠다는 의도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 미국 정부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는 고위급 관계자들 역시 이 부분에 대해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와 관련해서는 물러설 수 없다는 확고부동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北의 한국 배제 선미후남? 정부 정책 잘못 짚어
우리 정부는 지난해 남북미 관계를 진전시키고 평화 분위기와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북한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북·미 협상이 교착국면에 빠지면서 북한의 대남비방과 의도적인 배제를 당하고 있다.

천 이사장은 "선미후남이든 통미봉남이든 결국 뜻은 다 같은 것"이라며 "북한이 한국에 불만을 표시하며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은 이용가치가 크게 떨어졌고, 한국이 미국을 북한이 원하는 방식으로 설득해주지 않는 한 방해꾼 밖에 안 된다는 판단을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평화무드를 조성하고 긴밀한 모습을 연출했던 본질은 남한이 대북제재를 무릅쓰고라도 남북경협을 추동하거나 미국을 설득하기를 바란 것인데, 두 가지에서 문 정부가 확실한 태도를 보여주지 않자 화가 잔뜩 났다는 것이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천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북핵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사진=김범석 기자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천 이사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북핵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서는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다. /사진=김범석 기자
천 이사장은 "문 대통령 주변에 북핵의 본질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고 대통령의 인식도 부족하니 결국 이런 상황이 펼쳐지게 된 것"이라면서 결국 결렬된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정부와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불신감은 더욱 커지게 됐다고 분석했다.

천 이사장은 "우리 정부가 제대로 된 중재자·촉진자로 기능하려면 문 대통령과 정부는 북한에 '미국이 비핵화 진정성을 믿을 수 있도록 핵을 몇 개 내놓든 영변 외 시설을 내놓든 확실한 성의를 보여라. 작게 주려고만 하면 '딜'이 깨진다'는 식으로 북한을 설득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생각 같은 사람들 이야기만 들어서는 안 돼"
천 이사장은 외교안보 분야의 경우 '다른 의견'을 듣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좀 더 다양한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얘기다.

그러면서 참여정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에 재직했던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경험을 사례로 들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있었지만 노 대통령은 결정을 내릴때 직접 협상에 참여했던 평화교섭본부장의 보고를 듣고 판단했다는 것. 대통령이 듣기 좋은 식의 해석이 아니라 협상의 진행상황과 그에 따른 생각을 가감없이 들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청와대 인사들의 이야기도 들어야하겠지만 외교안보정책의 최일선에 있는 전문가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현 상황에서는 문 대통령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더 많은 얘기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비핵화 비록 1% 가능성만 있어도 협상은 해봐야
천 이사장은 이어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면서도 "그러나 외교에서는 1%의 가능성도 있다면 시도를 해봐야 한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 1%가 0%가 됐을 때 군사적 해결이나 플랜B를 논해야지 속단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비핵화가 안 된다는 것을 너무 강조해 협상의 여지까지 잃는다면, 북한의 핵을 인정해주고 다른 나라로의 핵 이전·미국까지 날아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막는 수준에서 끝나는 우리로서는 최악의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며 협상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이 테스트할 기회가 남아 있는데 북한이 영변 외의 핵 시설을 내놓는가, 비핵화 최종시점까지 어떻게 나갈 것인지를 정하는 비핵화 로드맵 설정 부분이 그것이다"라면서 "이 과정에서 북한이 현실성 없는 것들만 말한다면, 비핵화 의지는 없다고 봐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튜브 천영우TV 개국.."바람직한 외교안보 길잡이 되길"
천 이사장은 최근 유튜브에 천영우의 천영우TV를 개국, 종심(從心)이 다가오는 가운데 출사표를 던졌다.
정부 외교안보정책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 한국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짚어주기 위해서다.

그는 "구독자를 끌어모아 '스타 유튜버'가 되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이 문제를 다루는 기자나 학자들, 외교안보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면서 그동안 여러 곳에서 유튜브를 해볼 것을 권유받았다고 말했다.


천 이사장은 유튜브 방송에 대한 무겁지만 소박한 바람을 전하며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보다는 연신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어려운 외교안보 환경과 뾰족한 해법을 찾기 힘든 상황에 대해 우려와 걱정을 하며 우국(憂國)의 심경을 내비쳤다.

vrdw88@fnnews.com 강중모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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