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상 SK텔레콤 사업부장(왼쪽)과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가 28일 3000억원 규모의 지분 맞교환에 합의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유영상 SK텔레콤 사업부장(왼쪽)과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가 28일 3000억원 규모의 지분 맞교환에 합의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악수하고 있다. /SK텔레콤 제공
SK텔레콤과 카카오가 3000억원 규모의 지분을 맞교환하고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한다고 28일 발표했다. 구글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통신사가 콘텐츠 사업에 나서는 등 국가, 사업 간 경계가 무너지며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추세를 반영했다.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협력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SK텔레콤은 3000억원 규모의 자사 주식을 카카오에 매각하고, 카카오는 신주를 발행해 SK텔레콤에 배정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맞교환한다. SK텔레콤은 카카오 지분 2.5%를, 카카오는 SK텔레콤 지분 1.6%를 보유하게 된다. 양사 모두 ICT 협력을 위해 특정 기업과 지분을 맞교환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텔레콤과 카카오는 통신, 커머스, 디지털 콘텐츠, 미래 ICT 등 4대 분야의 서비스와 사업뿐만 아니라 연구개발(R&D) 분야에서도 협력하기로 했다.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개방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며 “한국 ICT 생태계를 혁신하고, 글로벌 경쟁사와 견줄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 안 하면 다 죽는다"…경쟁 관계 SKT-카카오 '적과의 동침'

경쟁 관계이던 SK텔레콤과 카카오가 손잡았다.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그동안 두 기업은 인공지능(AI), 음원, 콘텐츠, 모빌리티, 전자상거래 등의 분야에서 싸워왔다. SK텔레콤과 카카오가 명분 대신 실리를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글·넷플릭스 공세 막자"…SKT·카카오 지분 맞교환
지분 맞교환해 전방위 협력

양해각서(MOU) 수준의 협력이 아니란 점이 눈길을 모은다. 동맹의 증거로 교환하는 지분만 3000억원어치에 이른다. SK텔레콤은 3000억원 규모(127만 주)의 자기주식을 카카오에 매각하고, 카카오는 신주 218만 주를 SK텔레콤에 배정한다. SK텔레콤은 카카오 지분 2.5%를, 카카오는 SK텔레콤 지분 1.6%를 보유하게 된다.

통신, 커머스, 디지털 콘텐츠, 미래 정보통신기술(ICT) 등 네 가지 핵심 분야에서 협력이 이뤄진다. 사업과 서비스는 물론 연구개발(R&D) 단계부터 힘을 모으기로 했다. SK텔레콤의 통신, 카카오의 플랫폼과 콘텐츠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너지를 낸다는 계산이다. SK텔레콤의 5세대(5G) 이동통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업 기회도 함께 모색한다.

양사는 AI 스피커에서 누구(SK텔레콤)와 카카오미니(카카오), 음원 플랫폼에서 플로와 멜론, 모빌리티에서 T맵과 카카오내비 등 경쟁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동시에 협력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콘텐츠 사업에서 구체적인 협력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 8월 문을 연 SK텔레콤과 지상파3사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웨이브(wavve)에 카카오의 콘텐츠를 접목하는 방식이다.

카카오는 계열사인 카카오페이지, 카카오M 등을 통해 웹툰·웹소설, 드라마·영화 등의 분야에 진출해 있다. 카카오가 제작한 영상 콘텐츠를 웨이브에 제공하거나 웹툰 등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드라마를 만드는 방식의 협업이 가능하다.

카카오톡 내 쇼핑 기능(선물하기, 쇼핑하기)에 SK텔레콤의 전자상거래 기업 11번가 등을 연계하거나 택시 중개 플랫폼 카카오T에서 T맵을 활용할 수도 있다.

“글로벌 업체와의 경쟁력 확보”

지분 교환을 선택한 건 보다 지속적이고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위해서다. 두 기업은 지속적인 협력을 위해 ‘시너지 협의체’도 신설하기로 했다. 유영상 SK텔레콤 사업부장과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가 각각 협의체 대표 역할을 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지분 교환은 보다 긴밀하고 구체적인 협력을 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지속성을 강조하는 건 글로벌 기업들의 공세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콘텐츠 분야에서는 이미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해외 콘텐츠가 국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앞으로 음원과 AI, 커머스 등에서도 글로벌 기업은 국내 기업에 위협이 될 전망이다. AI 스피커 시장에서는 여전히 국내 기업들이 강세지만 구글, 아마존, IBM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글로벌 AI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다. 두 기업은 협력을 통해 국내 ICT 생태계도 공고히 할 계획이다.

SK텔레콤에는 신사업으로 뻗어나가는 밑바탕이 될 전망이다. SK텔레콤은 5G 상용화 이후 콘텐츠, 모빌리티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더 이상 통신 사업자로만 머물지 않겠다는 뜻이다. 통신사들은 올초 5G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국내외 IT, 콘텐츠 기업과 공격적으로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전설리/홍윤정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