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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보업계 1위 삼성화재, 메리츠와 툭하면 으르렁 왜?

입력 : 
2019-10-21 11:21:47
수정 : 
2019-10-21 11: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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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보험업계 부동의 1위 삼성화재와 중위권 메리츠화재가 사사건건 부딪치고 있다. 두 회사는 올 들어 질병을 보장하는 장기인보험 시장에서 1위 자리를 놓고 피 말리는 점유율 경쟁을 펼쳐왔는데 최근에는 경력 설계사 모집과 관련해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했다. 신회계제도(IFRS17) 도입을 앞두고 장기인보험 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 두 회사 간 경쟁은 더욱 달아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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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인보험 경쟁 점입가경

▷삼성 보험료 10% 인하 견제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 간 장기인보험 시장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지난 10월 1일부터 삼성화재는 암보험, 건강보험 등 사람에 대한 질병을 보장하는 장기인보험 상품 보험료를 평균 15% 인하했다. 보험료 인하는 진단비부터 입원 일당 부분까지 담보에 대한 요율 개정을 통해 이뤄졌다. 상품별로는 종합건강보험 ‘마이헬스파트너’와 ‘천만안심’이 기존 상품보다 보험료가 각각 15% 인하됐다. 뇌혈관 질환 진단비를 보장하는 담보도 보험료가 40.7% 낮아졌다. 유병자 대상 간편보험 상품인 ‘유병장수’는 보험료가 10%가량 저렴해졌다. 삼성화재의 장기인보험 보험료 두 자릿수 인하율은 2009년(15%) 이후 10년 만이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이번 상품 개정은 1년에 한 번씩 진행하는 통상적인 개정의 일환”이라며 “장기보험 상품에 대한 안정적인 위험손해율 관리를 바탕으로 보험료 인하 조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삼성화재의 장기보험 위험손해율은 2017년 80.2%, 2018년 79%, 2019년 상반기 81.9% 등으로 꾸준히 업계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통상적인 조치’라는 삼성화재 측 설명에도 불구하고 보험업계에서는 삼성의 이런 행보를 다분히 메리츠화재를 의식한 조치로 보고 있다. 두 회사는 올 들어 장기인보험 시장에서 선두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해왔다. 삼성화재 입장에서는 자존심 구길 일이다. 자산 규모나 순이익 등 핵심 지표만 놓고 봐도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여러모로 소위 ‘급’이 맞지 않는다. 지난해 기준 삼성화재의 자산 규모는 약 79조원으로 20조원의 메리츠화재보다 4배 가까이 더 많다. 삼성화재는 거의 모든 보험 부문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흔들림 없는 1위를 유지해왔다.

이런 판도를 흔들기 시작한 것은 메리츠화재다. 메리츠화재는 김용범 부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보험 영업에 있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폈다. 메리츠화재는 손보업계 상위 4개사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동차보험을 줄이는 대신 장기인보험 시장 공략에 집중했다. 현재까지 실적만 놓고 보면 이런 전략은 주효했다.

양사 자료를 종합하면 올 1월부터 9월까지 장기인보험 신규 판매액(월납 초회보험료)은 삼성화재가 1277억원, 메리츠화재는 1244억원을 기록했다. 장기인보험 신규 판매액은 올해 1·3·4·8·9월은 삼성화재가, 5·6·7월은 메리츠화재가 근소하게 앞섰다. 2월은 두 회사 모두 116억원으로 동일했다.

실적 측면에서도 메리츠화재가 선전했다. 개별재무제표 기준 올 상반기 메리츠화재의 당기순이익은 136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1% 상승했다. 반면, 삼성화재의 상반기 순이익은 4261억원으로 36% 줄었다.

메리츠화재의 이런 행보를 바라보는 보험업계 시선은 엇갈린다. 그동안 보험업계에서는 특정 상품 시장에서 이런 식의 가격 경쟁을 벌였던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메리츠화재가 초대형 점포제를 도입하고 실적에 따른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손보업계의 ‘메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반면, 대형사의 시각은 그리 곱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암묵적으로 지켜오던 관행을 파괴하면서 보험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미꾸라지’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솔직한 속내다.

이런 우려에도 나름의 일리는 있다. 장기인보험 부문에서 메리츠화재는 이미 공격적으로 영업에 나섰고 업계 1위 삼성화재마저 보험료 인하에 나선 마당에 다른 손보사들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시간의 문제일 뿐 결국 경쟁 보험사들은 이들 행보를 좇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격 인하 대열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제 살 깎기 식 보험료 인하 경쟁은 손해율 악화로 보험사와 가입자 모두에게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올 상반기 기준 주요 손보사들의 장기보험 손해율은 대부분 90%를 넘는다. 80%대 초반은 삼성화재가 유일하다.

더욱이 장기인보험 시장은 어느 보험사든 쉽게 양보할 수 없는 시장이다. 오는 2022년부터 도입될 새 회계기준은 부채의 시가평가를 골자로 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장기인보험 같은 보장성 보험을 최대한 늘려놓는 것이 유리하다. 보장성 보험은 저축형 상품과 달리 새 회계제도 아래 충당금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장성 상품 비중을 늘리는 것은 어느 보험사든 최대 화두”라며 “삼성화재 입장에서도 이 부문 1위 타이틀을 뺏기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것”이라 촌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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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설계사 채용 대립 격화

▷메리츠, 사과 문자로 일단락

장기인보험 시장에서 경쟁을 벌이는 두 회사는 경력 설계사 채용을 두고도 대립을 빚었다.

최근 불거진 ‘GA 대표 문자 메시지 사건’이 단적인 예다. 얼마 전 메리츠화재는 주요 독립보험대리점(GA) 대표들에게 삼성화재를 비방하는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전송했다. 높은 수수료 정책을 앞세워 GA 소속 설계사를 대거 빼가고 있다는 평을 듣던 메리츠화재를 견제해, 최근 삼성화재도 신규 전속 설계사 수수료를 월납 보험료의 최대 1200%까지 지급하는 정책을 예고하자 GA 업계는 두 회사를 향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그런데 메리츠화재가 이들의 불매운동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삼성화재를 비방한 것이 양사 감정싸움의 발단이 됐다. 메리츠화재 관계자가 발송한 문자 메시지에는 “삼성화재가 GA 업계를 무시하고 전속 설계사 수수료를 인상해 어려움이 커졌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삼성화재는 ‘손해보험 공정경쟁질서 유지에 관한 상호협정(이하 상호협정)’ 위반으로 손해보험협회 산하 공정경쟁질서 확립 대책위원회(대책위)에 신고했다. 대책위는 손해보험사업의 건전한 발전과 공정경쟁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자율협의기구다. 삼성화재는 ‘메리츠화재가 다른 회사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비방하는 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대책위에 ‘허위사실 유포’로 갈등 중재 요청이 접수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대책위에 올라 징계가 결정된 보험사는 최저 30만원, 최대 1000만원의 제재금을 물어야 한다.

결국 메리츠화재는 삼성화재 측에 사과하고 주요 GA 대표들에게 문자 메시지에 대한 해명과 정정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메리츠화재는 재발 방지와 불공정한 스카우트 금지 등의 후속 조치를 약속했는데 삼성화재는 메리츠화재의 후속 조치 이행 여부를 확인한 후 조만간 대책위 신고를 철회할 것으로 전해졌다.

돌이켜보면 이런 상호 비방전은 지난해 말부터 메리츠화재가 공격적으로 전속 설계사를 채용한 것이 단초가 됐다. 메리츠화재의 전속 설계사 수는 올 상반기 기준 1만9741명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삼성화재는 메리츠화재가 설계사들에게 파격적 수준의 판매 수수료(1000~1200%)를 제시해 수백 명의 인력을 빼간 것으로 보고 이를 내심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일단 표면적으로는 경력 설계사 채용 경쟁에서 촉발된 두 회사 간 갈등은 수면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삼성화재가 장기인보험 보험료를 인하하는 등 공격적인 태세로 전환하면서 메리츠화재가 어떤 대응 전략을 보일지 이목이 쏠린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양측 모두 진흙탕 싸움으로 비춰지는 것은 피하자는 분위기라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라며 “하지만 장기인보험 시장에서의 경쟁이 계속되고 있어 다른 부문에서 또 다른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배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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