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 수녀
정지윤 기자

정지윤 기자

길을 가다가

하도 아파서

나무를 안고

잠시 기도하니

든든하고

편하고

좋았어요

괜찮아

곧 괜찮아질 거야

나뭇잎들도

일제히 웃으며

나를 위로해 주었어요

힘내라

힘내라

바람 속에 다 같이

노래해 주니

나도 나무가 되었어요

-시집 <희망은 깨어있네>에서

오래전 큰 수술을 받고 퇴원하기 전 의사는 저에게 ‘퇴원하고 나면 가끔씩 땅에 주저앉고 싶을 만큼의 큰 통증이 올 거니 그리 아세요’라고 했습니다. 한참 만에 다시 병원에 가서 그렇게 심하게는 아니고 그냥 참을 만한 통증만 왔다고 의사에게 말하니 ‘그러면 아주 다행이지요! 일부러 통증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하며 웃었습니다.

이 시는 어느 날 수술 후유증과는 별개로 온몸이 중심을 못 잡고 아플 때 옆에 잠시 나무를 붙들고 서서 기도하며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아픔이 다 가신 건 아니어도 나무를 의지해 서 있으니 어찌나 위로가 되던지! 그 후로 저는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더 좋아졌습니다. 늘 나무가 많은 집에 살고 있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우울하고 가라앉아 힘들 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이웃의 아픔과 슬픔의 무게로 부담을 느낄 때,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 정리가 안되어 마음에 그늘이 낄 때 저는 항상 나무 앞에 오래 서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느티나무 미루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오동나무 그리고 늘 푸른 소나무 잣나무에 이르기까지 나는 얼마나 자주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때로는 따뜻한 눈길의 친구로 때로는 상처와 아픔을 달래주는 치유의 의사로 그리고 때로는 바른 소리를 하는 준엄한 선생님으로 나무들은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오며 가며 나무를 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도입니다. ‘내 마음이여 조용히 저들 나무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만난 타고르의 시 중 이 한 구절에 반해 마음이 힘들고 시끄러울 적마다 화살기도처럼 되풀이해 외우곤 했는데 인도의 타고르 기념관에서 이 시를 만났을 적엔 첫사랑의 애인을 만난 듯 반가워 가슴이 뛰었습니다.

‘Be still… my heart! Those trees are prayers.’ 바로 이 구절이 아름다운 나무와 함께 새겨진 영문 사진집을 발견하고 즉시 구입해 지금껏 보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여 조용히!’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나무를 바라보는 이 가을, 나무의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수도원의 가족들도 다들 모습은 다르지만 아름다운 한 그루 나무로 살아옵니다. 오늘도 나무가 되어 나무에게 다시 한번 사랑을 고백해 봅니다.

‘당신을 보기만 해도 그냥 웃음이 나요/ 이유 없이 행복해요/ 웬만한 아픔 견딜 수 있고

어떠한 모욕도 참을 수 있어요/ 바람 많이 불어도 뿌리가 깊어 버틸 수 있는 내 마음

모두 당신 덕분이지요/ 어느 날 열매를 많이 달고/ 당신과 함께/ 춤을 추고 싶어요.’

(이해인의 시 ‘나무의 연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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