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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 위기에 무너지는 상권들-신사역 상가 20% ‘텅텅’…사당 공실 3배↑번화가·역세권·지하상가 ‘온 거리가 시름’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19.10.07 14:11:44
서울 곳곳에서 경기 침체에 따른 상가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 곳곳에서 경기 침체에 따른 상가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

# 구로역. 지하철 1호선 인천행과 천안행이 갈라지는 곳이다. 한때 구로역 일대는 서울 서남부 상권 중심지로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역세권 중 하나였다. 하지만 9월 28일 토요일 밤 찾은 이곳은 사람이 없어 한산하다 못해 적막함마저 느껴졌다. 구로역 상권의 쇠퇴 이유는 여러 가지다. 인근 신도림이나 영등포 경쟁 상권이 커지고 온라인으로 쇼핑 패턴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졌다. 여기에 AK플라자 구로점이 지난 8월 31일 폐점한 것이 결정타였다. AK플라자에서 근무하던 약 1000명의 직원과 수천 명 방문객이 사라지면서 인적이 드문 거리로 바뀌었다. 구로역 상권 약화 → AK플라자 폐점 → 상권 쇠퇴의 그래프를 그리면서 구로역 인근은 상권으로서 가치를 잃고 있다. AK플라자 개점과 함께 음식점을 운영했던 김지숙 씨(가명)는 “지금까지 이렇게 장사가 안된 것은 처음”이라며 “매출이 50% 이상 줄었다. 백화점 자리에 새로운 업체가 입점하면 그나마 나아질까 기대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전국 주요 상권이 속속 무너지고 있다. 경기 침체와 높은 임대료, 소비 패턴 변화 등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요즘 서울 어디를 가더라도 ‘임대’ 푯말이 붙은 빈 점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공실률 증가는 수치로도 잘 드러난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17년 1분기 3.9%에서 올해 2분기 5.5%로 상승했다.

강남 주요 상권 중 하나인 지하철 3호선 신사역 주변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17년 1분기만 하더라도 제로였다. 올해 2분기에는 18.2%로 치솟았다. 점포 5곳 중 1곳은 빈 점포라는 얘기다. 물론 신사역은 현재 신분당선 연장선 공사로 인해 어수선한 모습이다. 이를 감안해도 20% 가까운 공실률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서울 역세권 유동인구 톱5에 드는 사당역 주변. 2호선과 4호선 환승역으로 교통이 편리해 늘 사람이 붐비는 곳이다. 2017년 1분기 사당역 주변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3.2%에 불과했지만 올해 2분기 9%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혜화역’ 대학로 일대 역시 같은 기간 0%에서 4.4%로 증가했다.

상권 악화는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부산의 중심 서면은 같은 기간 공실률이 0%에서 2.7%로 증가했다.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면서 대구 최고 상권으로 우뚝 선 동대구역 일대도 4.3%에서 12.5%로 늘었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벌어지는 자영업 몰락이 공실률 지표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며 “일부 상권은 임대료를 내리고 있는데도 공실률이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심각한 경기 침체의 신호”라고 말했다.

▶무너지는 골목상권

▷눈 뜨면 사라지는 ○로수길

상권은 큰 도로에만 형성된 것이 아니다. 이면도로나 작은 골목에는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이 들어선다. 이면도로에 위치한 작은 가게들은 도시를 더욱 다양하게 만든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이면도로의 아기자기함은 대로변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특색 있는 음식점 또한 많다. ‘골목상권’이 중요한 이유다.

서울 전체 상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골목상권이 무너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리단길, ○로수길 등은 명성을 잃고 있다. 골목상권 대명사 격인 경리단길 일대가 쇠락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건물마다 ‘임대’ 푯말이 널려 있으며 세입자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이태원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2017년 1분기 14.9%에서 2019년 1분기에는 26.5%로 급등했다.

여러 골목상권 중 최근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곳은 샤로수길이다. 지난 6월 우리금융연구소는 ‘서울 주요 상권의 부동산 임대업 리스크 검토’라는 보고서를 통해 서울 시내 38곳 상권 중 임대·투자 여건이 가장 좋은 곳으로 샤로수길을 꼽았다. 그런 샤로수길 상권조차 경기 침체와 함께 젠트리피케이션 영향으로 흔들리고 있다.

샤로수길은 서울 관악구 관악로14길에 있는 골목상권이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에서 인헌초 방면으로 이어지는 이면도로를 말한다.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과 서울대 상징인 ‘샤’를 합쳐 ‘샤로수길’이란 이름이 붙었다. 원래 샤로수길은 동네 작은 골목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하철역에서 가깝고 대학가 상권이란 이점에 1인 가구가 밀집한 배후 수요를 두고 개성 있는 음식점이 하나둘씩 생겼다. 2012년 이후 급부상했으며 2014년부터 관악구에서는 ‘샤로수길’이란 이름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나섰다.

하지만 전성기는 생각보다 짧았다. 샤로수길이 유명세를 타면서 임대료는 이전에 비해 2~3배 이상 올랐다. 특색 없는 프랜차이즈 상점이 입점하기 시작했으며 한 번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 하지 않는다.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 보니 초창기 자리를 잡았던 상인들은 벌써부터 ‘출구전략’을 세우고 있다. 봉천동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요즘에는 권리금이라도 받고 빠지자는 사람이 늘면서 상권이 조금씩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쇠락하는 도심 상권

▷지하철역 상가 좋다는 것도 옛말

이미 진작부터 쇠퇴 조짐이 보였던 주요 도심 상권은 갈수록 상황이 악화되는 모습이다. 서울을 대표하는 도심인 종각 일대는 일부 인기 가게를 제외하면 주말 저녁에도 한산하다.

종각역 4번 출구에서 종로3가 방향을 걷다 보면 한눈에 봐도 상권이 침체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구역은 대로변 1층 빈 상가만 어림잡아 10곳이 넘어 보인다.

과거 종로 상권은 젊은 사람이나 외국인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오피스 수요도 있어 전반적으로 장사가 잘됐지만 경기 침체 직격탄을 맞았다. 종로 주변 오피스 공실이 늘면서 손님이 줄었다. 다른 상권보다 비싼 임대료도 부담이다.

1층 대로변은 물론 전철역 출입구 상가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에 대해 인근 상인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종로2가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예전에는 임대료가 비쌌지만 그만큼 손님이 많았기 때문에 감당이 됐다. 그런데 이제는 매출 자체가 줄다 보니 버틸 방법이 없다. 지금처럼 공실이 많은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때 최고 상권으로 분류됐던 지하철역사 안 점포도 공실률이 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지역으로 으뜸 상권으로 분류됐지만 모두 옛말이다. 쿼드러플 역세권인 공덕역이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을지로입구역부터 을지로 3가역으로 이어지는 지하상가는 빈 공간으로 넘쳐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서울 지하철 상가 중 240곳이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동인구가 비교적 많다는 신도림역, 구로디지털단지역 등 2호선 일대 상가도 마찬가지다. 구로디지털단지역 4번 출구에 위치했던 상가는 원래 편의점이었지만 공실이 된 지 2년이 지났는데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서울 주요 상권에서 예전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권리금이 사라진 상가가 늘어났고 임대료를 30% 이상 인하한 곳도 있지만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며 “쇠락하는 상권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8호 (2019.10.09~2019.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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