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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자영업자 그래도 해법은 있다

  • 노승욱 기자
  • 입력 : 2019.10.07 14:14:37
  • 최종수정 : 2019.10.08 09:51:31
70.2%.

지난 8월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소득 최하위 20%인 1분위 가구 중 ‘근로자 외 가구’가 차지한 비중이다(2019년 2분기 가계동향조사 소득부문 결과). 근로자 외 가구는 영세 자영업자나 5인 이상 사업체를 운영하는 가구를 말한다. 1분위 가구 소득은 132만5500원. 최상위 20%인 5분위 명목소득 942만6000원의 7분의 1도 안 된다. 2003년 소득분배 집계를 시작한 후 가장 큰 격차다. 우리 국민의 소득 양극화가 사상 최고로 벌어진 것이다.

통계청은 “사업소득이 줄어든 자영업자가 1분위에 많이 포함된 때문”이라고 밝혔다. 영업 부진으로 소득이 감소한 자영업자들이 대거 빈곤층으로 추락하며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얘기다. 국내 자영업 위기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매경이코노미의 다점포율 조사 결과에도 이런 자영업 위기가 고스란히 읽힌다. 투자형 다점포 점주와 생계형 점주들의 출점세가 눈에 띄게 둔화되고 폐점세는 확대됐다. 영업 부진을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눈물의 점포정리’에 나섰음을 시사한다. 우리 경제 최후의 보루인 자영업 시장의 위기와 해법을 살펴본다.



투자·생계형 점주까지 ‘자영업 엑소더스’

구조조정 시작…트렌디·혁신 점주만 생존


# 서울 마포구에서 크린토피아 가맹점을 4개 운영하던 박성호 다점포 점주는 최근 1개 점을 더 늘렸다. 인근에 위치한 영등포점이 영업 부진으로 매물로 나오자 시세 대비 절반 가격에 인수했다. 박성호 점주는 일반 내점 고객 외에도 헬스장, 찜질방, 모텔, 미용실 등 세탁 수요가 많은 가게들에 직접 영업을 해서 일감을 받아온다. 세탁물 배송차량이 10대에 달하고 경기도 하남·파주·일산까지도 배송을 간다. 그 결과 전체 매출의 80%를 B2B 영업을 통해 거둘 만큼 새로운 사업 모델로 자리 잡았다. 박성호 점주는 “시장 포화로 이제 내점 고객만을 기다리는 B2C 영업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다. 나도 B2B 영업을 안 했으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직접 현장직으로 근무한 결과 비로소 사업이 궤도에 오른 것 같다. 앞으로는 법인화 검토 등 경영에 더 집중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아우성이다. 영세한 생계형 점주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폐점이 속출하는 가운데,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두 개 이상 운영하는 투자형 점주들도 ‘진짜 실력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의 법칙’이 시작됐다. 온라인·모바일 쇼핑 활성화, 1인 가구 증가,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인한 오프라인 시장의 총수요 급감이 주원인으로 분석된다.

어떤 이들에게는 위기가 기회다. 남다른 운영 노하우를 갖춘 일부 자영업자들은 헐값에 나온 점포를 인수하며 오히려 사세를 확장하는 분위기다. 자영업 시장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2020년대에는 혁신 경영과 트렌드 분석에 특화된 극소수 자영업자만 생존할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다.

매경이코노미가 전국 20여개 업종, 80여개 주요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다점포율을 조사한 결과, 투자형 점주에 이어 생계형 점주들도 폐점이 잇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서울 중구 황학동 중고 주방용품 업체에 중고물품이 쌓여 있는 모습.

매경이코노미가 전국 20여개 업종, 80여개 주요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다점포율을 조사한 결과, 투자형 점주에 이어 생계형 점주들도 폐점이 잇따른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서울 중구 황학동 중고 주방용품 업체에 중고물품이 쌓여 있는 모습.

▶다점포율 6년째 조사해보니

▷다점포·가맹점 모두 감소 ‘최악’

매경이코노미는 지난 2014년부터 6년 연속으로 전국 20여개 업종, 80여개 주요 프랜차이즈 브랜드의 직영점, 가맹점, 다점포 변동 현황을 조사, 발표해왔다. 업종별, 브랜드별 부침(浮沈)을 통해 급변하는 자영업 트렌드를 분석하기 위해서다. 특히 복수의 가맹점을 운영하는 투자형 점주들의 다점포 출점 추이에 주목했다. 한 가맹점만 운영하는 생계형 점주에 비해 트렌드를 먼저 읽고 프랜차이즈를 갈아타는 경우가 많아 자영업 트렌드의 ‘선행지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점포율 조사 결과, 2014~2017년에는 업종별 부침이 뚜렷이 갈렸다. 대체로 1인 가구 증가와 웰빙, 배달 트렌드로 인해 편의점·간편식·치킨·디저트·세탁·코인노래방 업종이 뜨고, 패스트푸드·피자·외식·베이커리 업종이 지는 흐름이 읽혔다. 그러나 지난해 조사에서는 디저트·세탁·코인노래방을 제외한 거의 모든 업종에서 다점포가 감소, 자영업 시장 위기의 전조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가맹점은 지속 증가해 ‘투자형 점주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생계형 점주들이 들어와 상투를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냈다.

이번 조사에서는 다점포는 물론 가맹점 출점도 대거 둔화 또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 시장의 극심한 불황으로 주요 프랜차이즈의 출점이 부진한 가운데, 지난해 상투를 잡은 생계형 점주들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속속 폐점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 와중에도 일부 다점포 점주들의 추가 출점은 계속됐다. 특히 엔제리너스, 도미노피자, 스무디킹, WNH, 미니스톱 등은 가맹점과 다점포 출점이 전반적으로 둔화, 감소했는데도 가장 많은 다점포를 운영하는 ‘최다점포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자본력과 운영 노하우가 뛰어난 최다점포 점주들이, 영업 부진을 못 견디고 헐값에 내놓은 가맹점 매물까지 인수해 덩치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국내 자영업 시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수치로도 확인된 셈이다.

▶업종별 다점포 변화는

▷편의점·피자·커피·주스 ‘죄다 울상’

업종별로 살펴보면 우선 편의점의 다점포 감소세가 눈에 띈다. GS25, CU,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4사 모두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다점포율이 감소했다. 지난 5년간 다점포 자료를 제공해온 이마트24는 이번에는 “다점포 관리 부서가 따로 없어 답변이 어렵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세븐일레븐의 다점포가 402개(2790개 → 2388개) 줄어 가장 감소폭이 컸다. 이어 미니스톱 128개(465개 → 337개), CU 54개(2981개 → 2927개) 순이다. GS25는 편의점 4사 중 유일하게 다점포가 증가했다. 지난해 3942개에서 올해 4025개로 83개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가맹점이 1만2881개에서 1만3372개로 491개 증가하면서 다점포율(다점포/가맹점×100)은 31.2%에서 30.6%로 0.6%포인트 감소했다. 신규 점주 출점 속도에 비해 기존 점주의 추가 출점 속도가 더뎠다는 얘기다.

GS25와 CU의 다점포율은 2015년을 정점으로 4년 연속 감소했다. 편의점 시장 포화,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되자 기존 다점포 점주들이 추가 출점을 꺼리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GS리테일과 BGF리테일 주가는 2016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하는 주요 유통업체 매출 자료를 봐도 편의점 점포당 매출은 연중 최성수기인 지난 7~8월에 연이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자는 정체 또는 위축되는 흐름이다. 도미노피자는 가맹점이 10개(339개 → 349개) 늘었지만 다점포는 4개(120개 → 116개) 줄었다. 미스터피자는 가맹점이 지난해보다 23개(262개 → 239개) 감소했고 피자알볼로도 2개(267개 → 265개) 줄었다. 단, 두 브랜드 모두 다점포는 각각 2개, 10개씩 증가했다. 미스터피자 관계자는 “최근 1만900원에 무한 리필되는 뷔페 매장으로 콘셉트를 바꾸면서 점심 고객이 늘며 가맹점 일 매출이 30%가량 상승했다”고 자랑했다.

피자헛과 파파존스는 가맹점과 다점포가 모두 늘어 비교적 선방한 모습이다. 가맹점은 각각 5개, 12개, 다점포는 10개, 4개 증가했다. 피자헛은 매주 최대 53% 할인, 파파존스는 미국식 피자맛으로 차별화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피자마루는 지난해보다 가맹점은 1개(614개 → 613개) 줄었지만 다점포가 37개(8개 → 45개)나 늘었다. 기존 점주들의 손바뀜(양도양수) 현상으로 풀이된다. 피자마루 관계자는 “저가형 프랜차이즈는 상대적으로 창업비용이 낮고 생계형 점주가 많아 다점포 운영 사례보다 장기 운영 사례가 더 많다. 전체 613개 가맹점 중 5년 이상 된 매장이 294개, 10년 이상 된 매장도 81개나 있다. 특히 최근 피자치즈를 1㎏이나 넣은 신메뉴 ‘치즈핵폭탄 피자’가 화제를 모으며 매출이 30%가량 늘었다. 쥬씨, 설빙처럼 한 번에 ‘빵’ 뜨지 않고 동네 가게로서 작지만 꾸준히 운영할 수 있는 브랜드가 ‘장수 가게’가 되기 쉽다”고 말했다.

커피는 대형 매장으로 출점하는 고가 브랜드들의 부진이 지속되는 모습이다. 엔제리너스는 가맹점과 다점포가 각각 88개(618개 → 530개), 86개(131개 → 45개) 급감했다. 투썸플레이스와 드롭탑은 가맹점이 각각 80개, 3개 늘었지만 다점포는 4개, 22개 줄었다. 한때 1000개가 넘었던 카페베네는 가맹점이 44개 감소해 이제 346개만 남았다. 탐앤탐스는 가맹점이 5개 줄고 다점포는 4개 증가했다. 부진한 매장의 손바뀜으로 해석된다. 파스쿠찌는 가맹점이 14개 증가했지만 다점포는 50개로 지난해 그대로였다.

쥬씨는 가맹점과 다점포가 각각 86개, 26개 줄어 다점포율도 2.9% 감소했다. 2016년 혜성처럼 등장하며 저가주스 열풍을 일으켰지만 미투 브랜드 난립과 겨울 매출 부진으로 고전하는 모습이다.

▶다점포 늘어 ‘선방’한 브랜드는

▷연안식당·유가네·써브웨이 ‘웃음’

자영업 시장이 어렵다지만 그런 와중에도 가맹점과 다점포를 꾸준히 늘리며 제법 선전하는 브랜드도 있다. 키워드는 ‘가성비’ ‘틈새메뉴’ ‘1인 가구 공략’으로 모아진다.

커피업계에서는 이디야가 선방했다. 가맹점과 다점포가 각각 203개(2373개 → 2576개), 17개(258개 → 275개) 늘었다. 경기 불황 속 가성비 좋은 브랜드의 호조세가 이어지는 모습이다.

외식업계에서는 꼬막비빔밥 등 해산물 전문점을 내세운 연안식당과 차돌박이 삼겹살 열풍을 일으킨 이차돌이 약진했다. 연안식당은 가맹점과 다점포가 각각 99개(126개 → 225개), 44개(48개 → 92개) 늘어 다점포율이 지난해보다 2.8% 상승한 40.9%에 달한다. 이차돌은 올해 첫 조사에서 다점포율 22.9%(201개 가맹점 중 다점포 46개)를 기록했다.

유가네닭갈비도 지난해보다 가맹점과 다점포가 36개(148개 → 184개), 8개(39개 → 47개) 증가했다. 유가네닭갈비 관계자는 “철판볶음밥 1인분이 6000원인 가성비와 중소 매장에서의 배달 매출 극대화 전략이 불황기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비결”이라고 자랑했다.

써브웨이, 맘스터치, 두끼떡볶이도 잘나간다. 써브웨이는 가맹점과 다점포가 각각 28개, 25개 늘어 다점포율이 5.5%포인트 상승한 22.4%를 기록했다. 가맹점 증가분 28개 중 신규 점주와 기존 점주의 출점 비중은 6:4. 브랜드 외부 관계자와 내부 관계자 모두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은 셈이다.

강남에서 가맹점 4개를 운영하던 써브웨이 최다점포 점주도 올해 1개를 추가로 늘렸다. 써브웨이 관계자는 “써브웨이는 브랜드 철학과 운영을 깊이 이해하는 기존 점주의 추가 출점, 즉 다점포 운영을 장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맘스터치도 가맹점과 다점포가 67개, 17개 늘어 다점포율이 1%포인트 오른 9.1%다. 맘스터치는 생계형 업종임에도 2016년 첫 조사 이후 다점포율이 3년 연속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두끼떡볶이도 가맹점과 다점포가 47개, 12개 늘어 다점포율이 1.5%포인트 상승한 20.4%를 기록했다. 역시 뛰어난 가성비가 호평받은 것으로 보인다.

크린토피아, 세븐스타코인노래방은 1인 가구 증가 수혜를 톡톡히 봤다. 크린토피아는 가맹점과 다점포가 각각 92개, 17개 늘어 다점포율 4.7%를 기록했다. 지난해보다 0.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특히 요즘은 기존 세탁편의점 모델에 코인워시365(24시간 무인 코인빨래방)를 접목한 멀티숍이 업계 최초로 800호점을 돌파, 투자형 창업 아이템으로도 주목받는다. 세븐스타코인노래방도 가맹점과 다점포가 각각 39개, 23개 늘었다. 다점포율은 지난해보다 9.9%포인트 상승한 18%를 기록했다.

[특별취재팀 = 노승욱(팀장)·강승태·나건웅·김기진 기자 / 그래픽 : 신기철]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8호 (2019.10.09~2019.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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