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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가상한제 6개월 유예했지만…상한제 철회 없이는 결국 미봉책 불과 장기적으론 공급난…부작용 불 보듯

  • 강승태 기자
  • 입력 : 2019.10.11 10:08:40
  • 최종수정 : 2019.10.11 10:38:16
서울을 중심으로 슬금슬금 아파트 가격 상승 조짐이 보이자 정부가 다시 한 번 칼을 뽑았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법인도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40%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10·1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고가 1주택자의 전세대출 보증도 제한한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전초전 성격이 강한 대책이다.

소급 논란이 일었던 재개발·재건축 단지에는 ‘퇴로’를 열어줬다. 이미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한 재건축 단지에는 상한제가 일괄 소급 적용되지 않도록 6개월 유예기간을 뒀다.

▶10·1 대책 발표 배경은

▷서울 집값 또 들썩이자 선조치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집값 상승 ‘불의 고리’를 끊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아파트 가격은 ‘고분양가 → 재건축 가격 상승 → 주변 시세 급등 → 서울 외곽·수도권 확산 → 다시 분양가 상승’의 악순환이 반복됐다. 여기서 핵심은 높은 분양가와 정비사업이다.

현재 서울에서는 재건축·재개발로 대표되는 정비사업 구역을 제외하면 아파트를 개발할 만한 부지가 없다. 신규 공급은 대부분 정비사업을 통해 이뤄진다. 분양가를 낮춰야 재건축 단지 가격이 떨어지고 전체 부동산 가격이 안정된다는 것이 정부 논리다. 투자가치가 큰 정비사업 주택 가격이 주춤하면 나머지 지역 역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검토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7월을 기점으로 서울 부동산 시장은 다시 들썩이기 시작했다.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면 앞으로 공급부족이 예상되기 때문에 미리 주택을 사두자는 수요가 늘어난 때문이다. 정부가 굳이 10·1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것도 시장 과열을 미리 차단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10월 말까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위한) 시행령 개정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고 실제 적용 시기와 지역에 대해서는 시행령 개정 완료 후 시장 상황을 감안해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행 주택법에서는 민간택지 아파트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다만 요건이 까다롭다. 정부는 요건을 완화한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해 실질적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의 강도는 낮추기로 했다. 앞서 8월 국토교통부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시점을 ‘입주자 모집공고일’로 못 박았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는 경과 규정을 신설해 일괄 소급 적용의 부작용을 줄이기로 했다.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단지는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 6개월 뒤 입주자 모집공고를 내더라도 상한제 적용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예정대로 10월 말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내년 4월까지 분양에 나선 단지들은 상한제를 피할 수 있다.

소급 적용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던 국토부가 한발 물러선 것은 ‘개포주공 1단지’와 ‘둔촌주공’ 등 재건축조합이 연일 시위를 벌이는 등 반발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유예기간 적용’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의 목소리가 크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너무 낙관적 상황만 가정하고 있다”며 5가지 관점에서 이번 대책 문제점을 제기한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엘스아파트의 매매·전세가격이 오르고 있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엘스아파트의 매매·전세가격이 오르고 있다.

문제 1 6개월 유예 효과 있나

▶사실상 적용 대상 단지 드물어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관리처분계획인가는 받았지만 분양에 이르지 못한 단지는 61곳, 6만8000가구 규모다. 이들 단지는 내년 4월 이내 입주자 모집공고를 신청하면 상한제를 피할 수 있다.

문제는 내년 4월까지 입주자 모집공고 신청이 가능한지 여부다. 현행 규정은 100% 철거가 이뤄져야 분양을 신청할 수 있다. 즉,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단지는 6개월 안에 분양 신청을 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만만찮다. 일단 이주하고 철거에만 최소 1년 이상 소요된다. 철거를 이제 막 시작한 단지도 6개월 안에 마무리하는 것이 쉽지 않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서 발급, 구청의 분양 승인 등의 절차도 남아 있다.

이 모든 절차를 6개월 안에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6개월 유예 규정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철거가 진행 중인 잠실 진주나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반포주공 1단지(1·2·4지구) 등은 예외 규정 적용이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관심이 집중되는 곳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다. 1만2032가구로 단일 규모로는 국내 최대 재건축 단지다.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입주자 모집공고 일정이 어그러졌다. 조합은 6개월 유예기간 안에 입주자 모집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비업계에서는 시간상 촉박하다는 평가를 내린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주민 합의가 빨리 이뤄지면 가능한데 워낙 조합원이 많은 단지기 때문에 6개월 안에 가능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문제 2 공급 확대 가능할까

▶유예기간 효과 없으면 공급 안 늘어

분양가상한제에 대해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공급 위축이다. 건설사들은 시장 진입 자체를 꺼리고 정비사업조합 역시 사업 추진을 뒤로 미룬다. 서울처럼 공급할 만한 부지가 적은 지역은 정비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주택 신규 공급 자체가 불가능하다. 2007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했을 때도 주택 공급량은 큰 폭으로 감소한 바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서울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08년 5만6000여가구에서 2009년 3만1700여가구, 2010년 3만5000가구, 2011년 3만6900가구 등으로 반 토막이 났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6개월 유예기간을 두면서 공급 위축에 대한 시장 우려를 불식하는 데 중점을 뒀다. 또 12년 전과 달리 이번에는 ‘핀셋 규정’을 적용하기 때문에 공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 생각은 다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막상 서울 등 주요 지역 중 분양가상한제 적용에서 제외되는 대상이 되는 단지가 드물다”며 “전반적으로 시장에 공급되는 새 아파트 물량이 부동산 시장을 흔들 만큼 많지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재건축 단지 가격 상승만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발 빠른 사람들은 벌써부터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6개월 내 분양이 가능한 단지를 찾아 나섰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분양가상한제 발표 이후 재건축 단지들은 사업성이 나빠져서 어느 정도 조정을 받았는데 6개월 내 다시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할 테니 기존보다 가격이 더욱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 3 우려되는 전세난

▶정부는 괜찮다고 하지만…

전세난 역시 예사롭지 않은 문제다.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에서 “상한제 청약 대기에 따른 전세가격 상승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강조한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많고 등록 임대주택 비율이 높아 전반적인 전세 시장 불안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 예상과 반대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7월 1주 이후 11주 연속 오르고 있다.

전세 상황을 잘 보여주는 예시가 하나 있다. 강동구에는 이미 1만가구 이상 물량이 풀리고 있는데도 ‘역전세난’ 소식이 잘 들리지 않는다. 강동구와 멀지 않은 잠실의 신축 아파트 단지 엘리트레파(엘스, 리센츠, 트리지움, 레이크팰리스, 파크리오)에는 전용 84㎡ 전세 매물이 극히 드물다.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많이 오른 상태에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시행이 예고되자 높은 시세차익을 기대하는 이들이 전세로 눌러앉는 경우가 많아졌다. 가을 이사 철 학군 수요와 최근 저금리 기조 등이 집값과 전세가격에 복합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 4 무주택자 도움 될까

▶현금 부자만 로또 청약 가능

‘분양가상한제를 실시하면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내집마련의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정부는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전체 실수요자의 내집마련 부담을 완화하고 무주택자 실수요자에게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시장은 이미 일반 무주택자가 접근할 수 없을 만큼 고가에 책정됐다. 서울에서 분양하는 어지간한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금 10억원 이상 보유해야 진입할 수 있다.

최근 분양한 서울 강남구 삼성동 ‘래미안라클래시’에는 일반분양 물량 총 112가구 모집에 1만2890명 신청자가 몰렸다. 평균 청약경쟁률은 무려 115.1 대 1. 이 아파트는 최소 10억원 이상 보유한 ‘현금 부자’만 청약에 뛰어들 수 있다. 그럼에도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앞으로 나오는 분양 물량도 라클래시처럼 현금을 대거 보유하고 있으면서 가점이 높은 사람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서울 진입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 속에서 분양가상한제 시행은 자금 출처 소명이 가능한 자산 많은 현금 부자들의 놀이터밖에 될 수 없다. 일반적인 무주택자에게 서울 청약 시장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래미안라클래시’는 분양 결과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래미안라클래시’는 분양 결과 100 대 1이 넘는 경쟁률을 기록했다.

문제 5 일관되지 않은 원칙

▶오락가락 발표에 실수요자만 곤란

부동산 시장은 심리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집값이 장기적으로 하락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가 여러 반대 의견에도 분양가상한제를 고집하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재건축 단지의 과도한 일반분양가 책정 방지 → 재건축 상승세 둔화 → 신축 등 기존 아파트 안정 유도’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재건축 단지가 안정되면 신축만 상승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장기적으로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는 것이 정부 생각이다.

문제는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를 대로 많이 올랐다는 점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대로 두면 강남이 3.3㎡당 1억원이 될 판”이라고 했지만 벌써 일부 강남 아파트는 3.3㎡당 1억원을 찍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 8월 14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59㎡는 23억9800만원에 거래됐다. 3.3㎡당 9992만원으로, 사실상 1억원이다. 반포동이나 개포동 등 강남 재건축 아파트가 3.3㎡당 1억원에 거래된 적은 있지만 재건축 단지 외 아파트 매매가격이 3.3㎡당 1억원을 찍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은 “저금리 기조로 유동성이 가뜩이나 부동산으로 흘러가는 분위기 속에서 정부 의도와 달리 되레 새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시그널이 강해진 것이 문제”라며 “강남 아파트 3.3㎡당 1억원 시대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말한다.

부동산 시장은 한 번 오르면 다시 떨어지지 않는 하방 경직성을 갖고 있다. 정부는 비교적 낙관적인 입장이지만 시장은 정부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토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를 4년간 지속하면 정책 시행 시점을 전후해 서울 집값이 11%포인트 떨어질 것”이란 자료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정부가 분양 가격 상승이 곧바로 시세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것이 결국 현재의 규제 부작용을 만들었다”며 “일단 제도 시행의 불확실성은 해소됐지만 규제지역의 분양 시장 과열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일관된 원칙 없이 기준을 자꾸 바꾼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시장에 분양가상한제 소급 적용은 없다고 했다가 다시 6개월 유예를 주면서 실수요자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후폭풍 우려

▷들썩이는 관리처분인가 받은 재개발 구역

전문가들은 이번 발표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의 불확실성은 일부 해소됐지만 집값 상승세를 잡기에는 역부족하다고 정리한다. 6개월 유예는 미봉책일 뿐,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어 결국 상한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내년 4월 이후 혹은 그 전에 부동산 가격이 다시 급등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이번 규제가 일부 투기 수요를 억제한다는 상징적 의미는 있겠지만 실수요 위주로 움직이는 상승장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분양가상한제 철회 없이는 결과적으로 공급절벽 우려를 해소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한다.

정부가 분양가상한제를 강행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벌써부터 역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재건축 단지나 재개발 구역은 들썩이는 분위기다. 서울 재개발 구역 중 관리처분인가를 받은 곳은 수색4구역, 상계4구역, 상계6구역, 북아현1-1구역, 용두5구역 등 10여곳이다. 재건축 단지 또한 6개월 내 분양이 가능한 곳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

정부는 지금과 같은 불안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10월 말 곧바로 상한제 적용 지역과 시점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동(洞)별 ‘핀셋’ 지정 등을 통해 선별적으로 정밀하게 골라 상한제를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심교언 교수는 “핀셋 지정은 오히려 정부가 찍은 지역이란 느낌을 주면서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며 “공급 위축 등 부작용 해소와 시장 안정, 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현실성 없는 계획일 수 있다”고 말했다.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8호 (2019.10.09~2019.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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