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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호텔서 핀테크·항공사까지…한층 날카로워진 박현주의 투자본능

  • 명순영 기자
  • 입력 : 2019.10.11 10:35:53
  • 최종수정 : 2019.10.11 10:38:28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또 한 번 특유의 ‘촉’을 발휘했다. 이번에는 미국 호텔이다.

그는 지난 9월 미국 주요 거점 도시에 있는 5성급 호텔 15개를 중국 안방보험으로부터 사들였다. 매입금액이 58억달러(약 7조원)에 달하는 ‘메가딜(초대형거래)’. 지난해 5월 국내 경영에서 손을 떼고 글로벌경영전략고문(GISO)으로 해외투자에만 골몰한 지 1년여 만의 결과물이다. 국내 금융사의 해외 대체자산(AI) 투자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박 회장이 이끄는 미래에셋은 국내외 경제가 위기일 때마다 기회를 찾아내며 성장해왔다. 1998년 외환위기 충격으로 시장금리가 30%씩 뛸 때 미래에셋운용 자금 100억원을 채권에 투자해 300억원을 벌었다. 2000년 초 IT 버블 시기에는 검색업체 다음에 24억원을 투자해 40배 넘는 1000억원을 챙겼다. 국내 최초 뮤추얼 펀드인 ‘박현주펀드’는 1년 만에 90% 수익률을 기록하며 박현주 신화의 서막을 알렸다. 2003년에는 ‘미래에셋 3억 만들기 펀드’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재테크 패러다임을 ‘저축’에서 ‘투자’로 바꿨다.



▶단기 대박 대신 안정적 ‘일드’ 중시

▷미국 명품호텔 투자로 연 4~6% 예상

이번에 미래에셋이 사들인 호텔은 뉴욕 JW매리어트에식스하우스호텔, 시카고 인터콘티넨털호텔 등 도심 랜드마크 호텔과 샌프란시스코 리츠칼튼하프문베이리조트, 로스앤젤레스(LA) 인근 몽타주라구나비치리조트 등 15곳이다. 중국 안방보험이 2016년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으로부터 55억달러에 호텔을 사들였는데 최근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매물이 나오자 박 회장이 곧장 낚아챘다.

박 회장의 해외 호텔 투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3년 호주 시드니 포시즌스호텔 매입(약 3800억원)을 시작, 2015년부터 샌프란시스코(페어몬트호텔)·하와이(하얏트리젠시와이키키호텔)·라스베이거스(코스모폴리탄호텔) 등 미국 호텔 투자를 본격화했다. 이번 투자까지 더하면 미래에셋이 보유한 글로벌 호텔 수는 21개(1만704개 실)나 된다.

현지 대출과 외부 투자자 조달자금을 제외하면 미래에셋이 자체 조달해야 할 자금은 2조~3조원가량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부동산 사모펀드를 조성하고 미래에셋대우와 미래에셋생명, 미래에셋캐피탈 등 그룹 계열사 자금이 투입될 예정이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한 운용업계 CEO는 “박 회장 오너십이 뚜렷하고 도전정신이 강해 국내 금융 역사상 최대 규모급인 해외 대체투자 딜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 회장이 주목한 포인트는 안정적인 ‘고정수익(일드·yield)’이다. 그는 평소 “지속적인 고정수익을 창출하는 우량자산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우량’을 넘어 ‘핵심’이라는 단어를 쓸만큼 안정성에 초점을 뒀다. 글로벌 호텔은 이 같은 박 회장의 철학에 딱 맞는 투자처였다. 미국 호텔업은 연간 예상 수익률이 4~6%대에 달한다. 미국 기준금리가 연 2%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2~4%포인트 높은 매력적인 투자 대상인 셈이다. 특히 이번에 투자한 호텔은 입지가 탄탄하고 브랜드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투자 위험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경제가 침체에 빠지더라도 ‘명품 호텔’ 수요는 비교적 탄탄해 안정적이라는 것이 호텔업계 분석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측은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 경제가 크게 성장하며 중산층이 늘어났고 관광 수요 역시 증가세”라며 “과거 동남아에 집중된 관광객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으로 옮겨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흥국 투자에 강점을 보여왔던 박 회장이 미국으로 눈을 돌린 데는 세계 경기 침체 국면에서도 미국이 나 홀로 성장세를 이어간다는 점이 반영됐다.

그는 최근 그룹 CEO 회의에서 “세계 경제에서 미국 정도만 강해 보인다”며 “미래 산업에서도 미국이 플랫폼을 선점해 경쟁력이 제일 좋다”고 봤다. 지난 7월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는 가운데에서도 미국 성장률 전망치만 2.3%에서 2.6%로 높였던 점도 박 회장의 판단에 힘을 실어줬다.

성장세가 뚜렷한 미국에 집중하는 모습은 리스크 관리를 중시하는 박 회장의 단면을 보여준다. 일각에서는 박 회장이 ‘핫한’ 투자처만 고른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낸다. 이에 대해 미래에셋 측은 “박 회장이 예민할 정도로 위험관리를 중시한다”고 반박한다. 한창 미래에셋 명성을 드높였던 국내 주식 펀드에 그치지 않고 해외투자로 눈을 돌린 것이나, 이후 국내외 대체투자 비중을 높인 것 역시 위험도를 낮추기 위한 분산 차원이었다는 설명이다.

박 회장은 최근 임직원에게 도전정신과 투자 다각화, 글로벌 진출 중요성을 언급했다. “위기는 미소 띤 얼굴로 찾아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자”며 “위기관리와 동시와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규제, 국내 기업 이익 악화 등 대내외 악재가 산적해 자칫 투자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메시지다.

을지로 미래에셋 본사 빌딩 전경.

을지로 미래에셋 본사 빌딩 전경.



▶맨땅에 헤딩式 해외투자 큰 성과

▷미래에셋 해외실적이 경쟁사 압도

박 회장의 해외투자 욕심이 미래에셋의 굴곡 없는 성장 비결이었다는 데 이견이 별로 없다.

박 회장의 해외 개척사(史)는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T 버블이 꺼지고 세계 성장이 정체된 2003년, 박 회장은 국내 최초로 홍콩에 운용법인을 설립했다. 당시만해도 미래에셋보다 훨씬 덩치가 큰 그룹·지주 계열 금융사조차 해외에 눈을 돌리지 못할 때였다. 국내 금융권에 ‘토종 자본은 해외에서 성공하기 힘들다’는 패배의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상당수 금융사 직원들은 해외 시장 공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박 회장은 중국 본토 성장 가능성을 읽고 결기 있게 밀어붙였다. 2006년 선보인 차이나솔로몬펀드가 신호탄이 됐다.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한 가운데 중국·홍콩 증시는 활황세를 보이며 수익률이 급등하자 국내에서 해외투자 붐이 일었다. 이후 미래에셋은 홍콩을 거점으로 싱가포르·인도 등지로 뻗어갔다.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 시장에서 뒷걸음치는 동안 독립 투자사인 미래에셋만 맨땅에 헤딩하듯 고군분투하며 성과를 쌓아간 셈이다.

주식투자만이 아니다. 2006년 중국 상하이 푸동의 대형 빌딩(현 미래에셋상하이타워) 인수를 시작으로 2011년 세계 1위 골프용품 브랜드 ‘타이틀리스트’를 사들였다. 박 회장이 인수한 중국 상하이 미래에셋타워는 아직까지도 국내 자본이 중국 푸동 핵심 지역에서 구매한 유일한 건물로 남아 있다.

15년여의 해외투자 끝에 미래에셋은 전 세계 14개국 40여개 법인 사무소에 직원 1만2600명을 둔 글로벌 금융사로 거듭났다.

해외투자 과실을 거두는 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성과는 분명했다. 올해 상반기(1~6월) 미래에셋이 해외에서 거둔 수익은 세전 1300억원. 이는 지난해 해외 수익(1500억원)의 87%로, 반년 만에 지난해 1년 치 가까운 실적을 올렸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성과는 더욱 도드라진다. 국내 14개 증권사(미래에셋대우 포함) 2018년도 해외 점포 당기순이익은 1351억원.

올해 미래에셋은 혼자 상반기에만 이에 육박하는 성적을 냈다. 수익은 주로 대체투자에서 나왔다. 미래에셋대우가 1조원짜리 프랑스 파리 랜드마크 건물 마중가타워를 인수하고, 4000억원 규모 미국 라스베이거스 복합리조트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따내는 등 투자은행 부문 수수료 수입을 늘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T8빌딩을 4억유로(약 5200억원)에 매각했다. 2017년 2억8000만유로(약 3600억원)에 인수한 지 2년 만에 1600억원 차익을 낸 것. 이 투자는 투자 기간 7% 중반대 배당이 이뤄져 매각이 완료되면 연 25% 넘는 내부수익률(IRR)을 기록할 듯 보인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최근 인수한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운용사 ‘글로벌 엑스(GlobalX)’의 수수료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들어서도 굵직한 투자를 잇달아 추진 중이다. 인도에서는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회사 ‘빅바스켓’(약 660억원), 인도네시아에서는 e커머스 회사 ‘부칼라팍’(약 600억원)에 투자했다. L&L홀딩스 등 미국 현지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진행하는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새로운 랜드마크 조성 사업에도 3억7500만달러(약 4200억원)를 투자했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2016년 미래에셋대우 출범 이후 글로벌 투자가 눈에 띄게 늘었고, 미래에셋그룹 해외 부문 수익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내는 ‘공간’ ‘4차 산업혁명’ 화두

▷인프라·관광·결제 등 전방위 투자

미래에셋그룹이 해외에서 부동산에 집중하고 있다면 국내에서는 ‘공간’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투자한다. 미래에셋은 경기 성남 판교의 랜드마크 알파돔시티에 1조8000억원 규모의 IT(정보기술) 플랫폼 기반 복합시설 개발을 진행 중이다. 3개 동 오피스빌딩을 2021년 완공하는 프로젝트로, 오피스 등 업무공간 26만4000㎡, 리테일·상업시설 10만㎡ 등 36만4000㎡(11만평)에 달해 40개 기업 1만3000명 인력이 한데 모일 수 있다.

인프라 분야에도 진출했다. 성산대교 남단에서 금천IC를 잇는 서울 서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에 8300억원 규모의 펀드를 투입해 202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운용 기간은 향후 35년으로 업계 추산 4~5% 수익이 예상된다. 저금리 시대에 중수익 투자처를 발굴한 셈이다.

관광은 박 회장의 핵심 투자 키워드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남 여수 경도해양관광단지 투자다. 국내외 자본을 묶어 1조원 이상이 소요되는 대규모 프로젝트. 미래에셋은 기존 경도해양관광단지 시설물과 사업 일체를 인수한 뒤 6성급 리조트 호텔, 테마파크, 워터파크, 단지 내 골프장이 있는 페어웨이 빌라, 마리나, 해상 케이블카 등을 건설해 ‘세계적 수준의 아시아 최고 리조트’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전남도는 이 프로젝트가 1조7000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와 1만5000여개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추산한다.

핀테크(금융+기술) 비즈니스에도 공을 들인다. 미래에셋의 전략적 파트너인 네이버가 네이버페이를 분사시켜 11월 설립하는 ‘네이버파이낸셜’에 5000억원 이상 투자한다. 네이버파이낸셜은 간편결제 외 대출, 보험 등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아우르는 생활금융 플랫폼으로 나아갈 계획. 미래에셋대우와 네이버는 2017년 서로 5000억원씩 투자해 상대방 지분을 매입하며 우호적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국내 증권사 중 최초로 전자지급결제대행(PG)업에 등록, 해외 간편결제 사업에도 진출했다. 또한 증권업계 최초로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해외송금 서비스를 오픈했다. 현재 미래에셋대우는 해외 간편결제 서비스 도입을 위해 중국 텐센트와 공식 협약서 체결을 논의 중이다. 미래에셋대우 종합계좌를 보유한 고객은 MTS 애플리케이션(앱)에서 6자리 간편비밀번호(PIN) 인증만으로도 미국, 일본, 중국 등 전 세계 28개국에 업계 최저 수준의 수수료로 돈을 송금할 수 있다. 박 회장은 최근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과 함께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도 도전장을 냈다. 박 회장이 먼저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인 정몽규 회장에게 컨소시엄 구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에셋대우는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을 지배할 수 없다. 재무적 투자자(FI)인 만큼 전면에 나설 수는 없지만 전략적 투자자(SI)인 현대산업개발과 함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전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인수 후 항공업에서 살아남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전략까지 세웠다고 전해진다. 물론 박 회장 투자법에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박 회장이 최근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부동산은 현금화가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지금은 글로벌 부동산 경기가 괜찮지만 자칫 경기가 식을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박 회장 ‘촉’이 전부 맞아떨어진 것도 아니다. 2007년 전 세계를 대상으로 돈이 되는 곳에 투자하겠다며 선보인 ‘인사이트펀드’는 수익률 하락으로 고전했다. 2010년 당시 미래에셋증권이 집중적으로 팔았던 브라질 국채도 브라질 헤알화 폭락으로 투자자에게 큰 손실을 안긴 전력이 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28호 (2019.10.09~2019.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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