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하루종일 가장 많은 시간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은 무엇인가요? 손에 들고 있는 그 물건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최고의 목수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 동안 목공 도구들을 들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음악 연주가라면 많은 시간 자신의 손에서 악기를 놓지 않을 거예요.

손에 들고 있는 물건으로 하루의 대부분 시간과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손에서 놓지 않는 그 물건이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려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난 일년간 쓴 펜들
 지난 일년간 쓴 펜들
ⓒ 장유행

관련사진보기

 
저의 경우는 손에서 펜을 좀처럼 놓지 않습니다. 저는 하루의 아주 많은 시간을 노트에 무언가를 기록 하면서 보냅니다. 메모의 달인, 메모광, 일기전문가, 어떤 수식어도 어울릴 만큼 메모를 열정적으로 하다 보니 좀처럼 손에서 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어딜 가든 항상 손에 펜이 들려있어요. 화장실에 갈 때도, 잠깐 물 마시러 정수기 앞에 설 때도 제 오른손에는 항상 펜이 들려 있습니다. 간혹 '이 펜이 내 손에 아예 붙어버려서 떨어지지 않는 건가'라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기록하는 삶, 메모하는 삶이 곧 저의 정체성이자 삶의 일부가 되어가는 것이지요.

손으로 글을 쓰다보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글이 머릿속에서 나오는 건지, 펜에서 나오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왜냐하면 글을 쓰기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몽롱하던 뇌가 손에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순간 안개가 걷히듯 개운해지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노트에 기록을 하면 모호하고 불투명하던 생각이 정리되고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글감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서 깨어나고 이내 춤을 추며 노트 위로 튀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럴 때면 춤추는 생각들을 잡느라 손에 쥔 펜이 더욱 바빠지게 됩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글을 쓸 기분이 아닌 날에도 그냥 습관적으로 펜을 들고 무조건 노트를 폅니다. 이렇게 페이지 위에 아무 말이나 적어가다 보면 이내 뭔가 하나의 글 덩어리가 머릿속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은 노트 열 페이지를 넘게 아무 말이든 쏟아내야 겨우 하나의 글다운 글을 건지는 날도 있고, 또 어떤 날은 글을 쓰는 족족 모두 마음에 드는 보석 같은 날들도 있어요. 마치 금백을 발견한 듯 펜으로 그려내는 글마다 연이어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고 기쁘게 해주는 글을 지어내는 날들도 있습니다.

그런 날에는 마치 누군가가 머릿속에서 계속 말을 걸어주고 저는 함께 대화하듯 자연스럽게 그냥 받아 적는 기분이 들어요. 이렇게 말랑말랑해진 머리로 많은 글을 쓴 날에는 하루의 해야 할 일을 다 한 듯 뿌듯하고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기록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도구에 욕심을 내기도 합니다. 음악가가 자신의 악기에 욕심을 내듯 말이지요. 저의 글쓰기 도구는 다름 다닌 노트와 펜입니다. 글을 쓰는 날이 많아 질수록 저만의 특색을 나타낼 수 있는 선호하는 노트와 펜이 분명해지기 시작했어요. 그간 모아온 노트와 다 쓴 펜 카트리지 역시 저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습니다. 손때 묻은 노트와 펜을 수집하는 재미도 여간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이든 국가든 정체성이 중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손에 자주 들고 무슨 일을 하는지가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해준다면 지금 이 시간에 자신의 손에 무엇이 들려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웃님들의 인생에서 절대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태그:#정체성, #글쓰기, #메모광, #기록의달인, #몰스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