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좌도 우도 틀렸다…진짜 자유로운 시장만이 최선”읽음

문학수 선임기자

래디컬 마켓

에릭 포즈너·글렌 웨일 지음

박기영 옮김부키 | 472쪽 | 2만5000원

빈민촌과 부촌이 맞붙어 있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면서 가장 위험한 도시다. 사진은 2013년 10월15일 복면을 쓴 사람들이 리우데자네이루의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하는 모습.  리우데자네이루 | AP연합뉴스

빈민촌과 부촌이 맞붙어 있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면서 가장 위험한 도시다. 사진은 2013년 10월15일 복면을 쓴 사람들이 리우데자네이루의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하는 모습. 리우데자네이루 | AP연합뉴스

이 책의 출발점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다. 어느 해 여름, 저자들 중 한 명이 그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첫 페이지가 열린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 도시 언덕에는 날림으로 조성된 빈민촌 ‘파벨라(Favela)’가 있다. 그 언덕 아래에는 “아마도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인 ‘레블론(Leblon)’이 위치해 있다. 터무니없이 비싼 명품과 최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한 곳. 그러나 “레블론 지역의 어느 누구도 길에서 명품 시계를 차고 다니거나, 밤에 붉은 신호등 표시 앞에서 차를 멈추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리우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다.”

경제적 측면에서 브라질은 “서반구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다. “소수 가문이 부를 독점하고, 인구의 약 10%가 국제 빈곤선 아래”에 속한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논쟁은 둘로 쪼개진다. 좌파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 빈곤층에게 주택·의료·일자리 등을 제공하자는 입장이다. 우파는 그 방식으로 가면 베네수엘라나 짐바브웨꼴이 난다며 결사 반대한다. 국영기업 민영화, 재산권 보호 강화,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을 실시해 경제가 잘 돌아가면 불평등은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브라질만의 상황이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극심한 불평등, 경기 침체, 좌우를 막론한 정치적 포퓰리즘이 몰아치고 있다. 저자들은 그에 대한 대안을 매우 독특한 관점에서 제시한다. 일단 두 저자는 좌우의 정책에 대해 “식상할 뿐 아니라 개선 효과도 없다”고 단언한다. 좌파 정책에 대해서는 이렇게 꼬집는다. “좌파는 사회 병폐를 고치는 일에서 엘리트 재량에 의존한다는 결함을 안고 있다. 자애롭고 공공선에 충실한 엘리트 관료들을 상정해 왔지만, 이들은 때때로 자의적이고 부패하고 무능하다.” 우파에 대해서도 역시 공격한다. “우파는 시장이 번성하는 데 필요한 사회 변화에 적극적이지 않다. 19세기 앵글로색슨 세계에 존재했던 이상적 형태의 시장을 그리워하며 추앙할 뿐이다.”

두 저자는 “사유재산은 독점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파격적 주장을 책 1장에서 펼친다. “사유재산으로 인한 부와 권력의 집중이야말로 문제”라는 진단이다. 얼핏 좌파적 행보로 보인다. 하지만 두 저자는 본질적으로 시장을 사랑하며, “시장만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중요한 시장들은 독점화돼 있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단하면서 “진정으로 자유롭게 열려 있는 시장만이 최선”이라고 제안한다. 말하자면 시장 지배력의 과잉, 혹은 시장이 아예 부재함으로써 작금의 극심한 불평등과 저성장, 민주주의 위기가 발생했다고 본다.

[책과 삶]“좌도 우도 틀렸다…진짜 자유로운 시장만이 최선”

책이 주장하는 시장의 본질은 ‘경매’다. “세상의 모든 재산이 늘 경매에 부쳐져 시세 이상을 지불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임대하고 사용”하는 것, 또 “자기 재산액을 스스로 평가해 공개하고 그 가격에 따라 세금을 내는 것”이 요지다. 결국 재산 또는 재화가 상시적 경매제도하에서 운용되기 때문에 소유권보다는 ‘사용권의 시장’이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저자들은 이를 “부분적 공동 소유제”라고 지칭한다. “공동 소유제는 독점을 방지할 수 있고 사유재산제도는 투자를 도모하므로, (이 양자를 결합한) 부분적 공동 소유제를 통해 단일한 재산권 제도 아래에서 배분 효율성과 투자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 ‘래디컬 마켓’ 개념을 정치 영역으로까지 확장한다. 1인 1표와 다수결제도의 모순을 해결할 방안으로 “제곱 투표”를 제안한다. 모든 시민에게 해마다 ‘보이스 크레디트’를 부여하고, 그 권리를 곧바로 쓸 수도, 이월해 사용할 수도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정치적 권리를 “언제, 어디에 쓸지에 대한 자유를 신장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관심이 높은 분야에 대해서는 10표, 20표라도 행사함으로써, “의사결정에 더 큰 책임감을 가지게 되며, 자신들 견해가 정책에 더 잘 반영된다고 느끼며, 열광적 소수가 무관심한 다수를 이기는 횡포도 해결된다”는 것이다.

책은 “세계적 차원에서 노동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개인 간 비자”라는 파격적 제안도 내놓는다. “노동의 국경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하면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를 67% 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 중 에릭 포즈너는 미국 시카고대학 법학대학원 교수다. 금융 규제, 국제법, 계약법 등을 전문으로 한다. 글렌 웨일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의 수석연구원이다.

책을 감수한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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