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여공 1970,그녀들의 反역사 | - 김원

정찬일 작가

‘수동형 존재’로 만든 사람들

[정찬일의 내 인생의 책]⑤여공 1970,그녀들의 反역사 | - 김원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이 반가웠던 것은 거대담론 혹은 지배담론을 싫어하는 편협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사다난한 이 세상을 ‘담론’이라는 그릇에 담으려는 인문학적 시도는 왠지 ‘규정되어진다’는 느낌이랄까? 점잖게 말하면 아나키스트 성향일 수도 있겠다.

1970년대 여성 노동자(여공)를 다룬 주제들도 그렇다. 계급적 혹은 노동운동 관점에서, 무엇보다 국가와 자본, 남성 노동자 관점에서 다룬 그들은 비생산적·수동적 존재로 규정됐다. 김원은 지금까지 지배했던 이 담론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고, 진짜 그들의 모습을 드러낸다.

핍박받는 ‘공순이’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남진·나훈아에 열광했던 10대 소녀였고, 여대생으로 위장하기 위해 청바지를 입고 신촌거리를 배회하던 세속적 욕망의 소유자였다. 대기업 공장은 그녀들 환경에서 갈 수 있는 최고의 직장이었다. 국가가 훈장을 달아준 ‘산업역군’에도 자부심을 가졌다(물론 이 말이 나중에 빛 좋은 개살구임도 깨닫게 되지만). 1970년대 노동운동의 주역이었음에도 주변부에 머물던 -‘전태일’ 평전을 쓴 남성조차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그들을 주체로서 끄집어냈다. 심지어 민주노조 신화도 여지없이 깨뜨린다. 필자는 “노동운동과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 안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남성주의’를 폭로, 해체하고 싶었다”고 한다. 패기는 거침없다.

20세기 사회학자 칼 포퍼는 “위대하고 힘센 자들의 역사는 기껏해야 하나의 천박한 희극에 불과하다. 인류 역사를 구성하는 사실의 영역은 무한히 풍부하므로 이를테면 음식 먹는 습관에 관한 역사나 전염병의 역사도 쓸 수 있다”고 말해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추구하는 시발점이 됐다.

이 책이 특정 시기 전문 분야를 다루지만 대중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은 ‘밑으로부터의 역사’에 아주 충실했기 때문이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