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우리 세대 다독여주고 싶었다.. 2030세대 꼭 봤으면" 연극 '게스트하우스'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21 11:59

수정 2019.09.26 01:11

대학로서 초연되는 힐링연극 '게스트하우스' 
[연출 인터뷰] 직접 대본 쓴 젊은 연출 진민범
"여성들의 목소리, 사회에 더 강한 메세지 전달할 것"
"극단 '벼랑끝날다' 들어가며 '음악이 주는 힘' 알게 돼"
"코미디도 고급스러운 장르로 인정 받고 싶어"
연극 '게스트하우스' 극본을 쓰고 직접 연출한 진민범 연출
연극 '게스트하우스' 극본을 쓰고 직접 연출한 진민범 연출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있어서 여자가 이야기하는 게 조금 더 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소년의 외침 보다 소녀의 외침이 더 울림이 있달까? 물론 여자 캐릭터들이 직접적으로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연도 많죠. 그런데 그런 공연은 운동이나 강연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러나 게스트하우스는 보다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여자 캐릭터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봤어요. 물론 이번 극이 남녀 성별로 보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모든 캐릭터들이 우리 주변에 충분히 있을 법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연극 '게스트하우스(부제 : 네 여자 이야기)'를 직접 쓰고 연출까지 맡은 진민범 연출(사진)은 "여자 캐릭터가 중심인 연극을 어떻게 만들게 됐나"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남자 캐릭터가 주름잡는 연극계에, 국내 창작극, 그것도 코미디·드라마극을 여자 캐릭터 네 명이 이끌고 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다. 호기로운 시도로 보였지만, 그의 대답에는 서른이 갓 넘은 젊은 연출답지 않은 진중함이 느껴졌다.

지난 19일 대학로 드림시어터에서 공연을 시작한 연극 게스트하우스는 2030세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는 낭만 여대생, 싱어송라이터의 꿈을 좇는 미혼모, 남자친구의 갑작스러운 프러포즈에 도망쳐 온 여자친구,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고 싶은 열혈 기자가 제주도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게 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진민범 연출은 "20대부터 30대 초중반까지, 사회 초년생들의 고민을 작품에 담아보고자 했다"고 설명하며 "이후에는 남자들의 고민을 담은 작품도 써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게스트하우스로 여행 오듯 편하게 공연 즐기길"

작가 겸 연출로서, 진민범 연출은 어떤 관객이 연극을 보러 와줬으면 생각할까.

"남녀를 불문하고, 20대 사회초년생들이 꼭 봤으면 좋겠어요. 비슷한 세대지만 조금 다른 연령대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각 캐릭터에 '치유'를 넣었어요. 다희에는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무의식적 폭력에 대한 치유, 은지에는 결혼이 주는 불안감에 대한 치유, 효은에는 꿈을 위협하는 현실에 대한 치유, 서희는 자신의 직업과 사회의식이 주는 치유, 창우에게는 현대사회에 지친 모든 사람들에 대한 치유를 넣었죠. 서로가 서로의 문제를 바라보며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 함께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즐거운 힐링극이지만, 극에는 난민과 남성혐오 등 젊은 층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언급된다. 진민범 연출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었을까.

"작품에도 나오지만, 젊은 사람들이 사회 이슈에 너무 무관심한 경향이 있는 것 같았어요. 극을 편하게 보다가 이런 문제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하고 싶었죠. 극을 보고 나가면서, 공연 이야기를 하면서, '맞아, 근데 넌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라며 편한 분위기로 이야기하게 하고 싶었답니다."

'이 연극을 꼭 보러가야 하는 이유'를 묻자, 진민범 연출은 이어 "일단 재밌습니다"라며 웃었다. 그는 "공연을 보면서 편하게 쉴 수 있어요. 게스트하우스라는 장소를 정한 것도 어딘가 쉬러 갈 때, 호텔은 부담스럽고 모텔을 가긴 찝찝할 때, 게스트하우스에 편하게 쉬러 가잖아요? 다양한 사람도 만나고요. 편하게 보러 와서 지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힐링 하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당부했다.

연극 '게스트하우스' 극본을 쓰고 직접 연출한 진민범 연출
연극 '게스트하우스' 극본을 쓰고 직접 연출한 진민범 연출

■맨 땅에 헤딩한 두 번째 작품 "성숙해졌다"

연출 진민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지난 2017년 연극 '에이에스센터'를 쓰고 연출한 이후 두 번째 작품이다. 2년 동안 젊은 연출은 얼마나 성장했을까.

"우선 극단 '벼랑 끝 날다'에 들어오면서 많은 부분이 성장했죠. 음악극을 중심으로 하는 극단에 들어가면서 '음악이 주는 힘'에 대해서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음악적으로 성장한 덕분에 싱어송라이터 '효은' 캐릭터를 공연에 활용하는 도전도 할 수 있게 되었구요."

그는 이어 "서사적으로 에이에스센터에 비해 조금 더 고급스러운 코미디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내가 생각하는 공연에 대해, 조금 더 퀄리티 있는 공연을 구현해낼 수 있게 된 게,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같아요"라며 "연출자로서도 배우들에게 디렉팅을 하는 부분도, 많이 성장한 것 같네요. 예전에는 캐릭터에 대한 제 생각을 배우들에게 강요했다면, 지금은 씨앗을 심어서 캐릭터가 배우 안에서 클 수 있게 기다려줄 수 있게 됐습니다. 내가 심지 않아도, 배우가 스스로 피워낸 새로운 꽃과 나무도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코미디도 고급스러운 장르로 인정받고 싶어"

연출 진민범의 꿈이 무엇일까. 그는 대답을 하기 전에 연극을 음식에, 극장을 음식점에 비교하며 운을 뗐다. 진 연출은 "대학로에는 유학파 쉐프가 만든 고급 레스토랑이나 프랜차이즈 음식점만 있는 것 같아요. 소상공인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레시피로 만든 음식은 부족한 것 같아요"라고 지적한 것이다. 예술적이며 실험적이지만 대중들이 편하게 다가가기 힘들거나, 관객들의 말초 신경만을 자극하는 연극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어 "대중적이지만 너무 자극적이지 않게, 관객이 편하게 다가갈 수 있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연은 아닌, 특색이 있는, 숨은 맛집 같은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마지막으로 진 연출은 "코미디라는 장르가 충분히 고급스러울 수 있습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나, '덤앤더머'도 코미디 작품이지만 충분히 고급스럽고 삶에 대해 진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죠. 그런데 한국에선 항상 다른 예술세계에 비해 낮게 평가를 받아왔어요. 앞으로도 극을 쓰고 연출을 할 텐데, 한국에서 코미디도 고급스러운 장르라는 걸 알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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